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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_잡문집


무라카미하루키잡문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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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기란 무엇인가]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
소설가는 왜 많은 것을 관찰해야만 할까? 많은 것을 올바로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할 수 없기때문이다.
그렇다면 판단은 왜 조금만 내릴까?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지극히 간단히 말하자면, 결론을 준비하기보다는 그저 정성껏 계속해서 가설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야기는 바람과 같다. 흔드리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소설가란 이 세상의 굴튀김에 관해 어디까지나 상세하게 써나가는 인간을 가리킨다. 자기란 뭘까? 하고 생각하자마자 (그런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우리는 굴튀김이나 민스 커틀릿이나 새우 크로켓에 관한 글을 써나간다. 그리고 그런 사상. 사물과 자기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방향을 데이터로 축적해 간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린다.

'프리pre 자기'와 '포스트post자기'

문학이라는 것 안에는 그렇게 계속성 안에서(그 안에서만) 언급되어야 할 강력한 특질이 있다.
그 강력함은 예컨데 발자크의 강인함이며, 톨스토이의 광대함이며, 도스토예스키의 심오함이며, 호메로스의 풍부한 비전이며, 우에다 아키나리의 투철한 아름다움이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세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해나가는 것은 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더없이 소중한 무엇이며, 틀림없이 앞으로도 이어져나가리라고 나는 느낀다.
이야기는 마술이다.

'진정한 자기란 무엇인가?'
'굴퀴김에 관해 이야기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분명 어딘가에서 나 나름의 계속성이나 도의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까지 든다.
나의 테두리는 열려있다.
뭐든 좋다. 뭐든 좋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공기를 마시는 구나, 라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난처한 세상]
그는 대체로 굉장히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난처해하고 곤란해 한다.
그저 단순히 긍정적으로, 열심히 난처해 한다.


[안자이 미즈마루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아침에 막 잠에서 깨어난 인간은 무방비하며 가장 부주의한 존재다.


[마흔살이 되면]
"남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남과는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다]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라는 자세를 유지하고 싶지만, 가끔은 인연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신기하면서도 신기하지 않다]
'신기하네'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한편으로는 '아니, 별달리 신기한 일도 아닌가' 하고 고개를 끄덜이는 사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다고 할까]
가난이 때로는 약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나는 소설을 쓴 지 삼십 년 가까이 흘렀고, 줄곧 일관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 좋은 대로 해왔을 뿐이어서 어딘가에 공헌했다거나 안 했다거나 하는 문제는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벽과 알]
무엇보다 먼저 자기 안에 진실의 소재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이 뛰어난 거짓말을 하기 위한 주요한 자격입니다.
외면하기보다 무엇이든 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실감할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영혼이 있습니다.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정말로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휴대전화로 읽는 시대가 되어도 계속 종이책을 사서 읽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실하게 존재합니다.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모두가 바다를 가질 수 있다면]
한밤의 그믐달 같은 뻣뻣한 미소
죽은 사람의 눈도 번쩍 뜨게 할 것처럼 활기차게 날아다니는 마이크 러브 옆에서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꿈의 기억이 아니라 꿈의 부재다.


[연기가 눈에 스며들어]
세계 한귀퉁이에 남몰래 뚫린 바람구멍으로 휙 빨려들어간 것처럼 자취도 형체도 없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려다.
강제로 표백되어진 듯한 기묘한 심경으로 하염없이 귀를 기울였던 멍크의 피아노 선율


[한결같은 피아니스트]
음악이든 글이든 뭔가를 꾸준히 창조해나가야 하는 고단함은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만들어진 작품에서 힘이나 깊이가 사라져버린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무슨 일을 하다보면 반사적으로 어떤 노래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이란 기억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혹시 기억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의 우리밖에 기댈 곳이 없는 셈이 된다.
어디든 좋으니 머나먼 나라로 떠나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처럼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의 첫머리 한 구절을 무심코 흥얼거리는 사람이 몇 백 명, 아니 몇 천 명이나 존재할 게 틀림없다고 혼자 추측해본다.


[노웨어 맨]
뭘 해도 잘 풀리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스스로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시기는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의 인생에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이나 나나 좀 닮지 않았나요?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정말 그래, 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래도 존 레넌 씨가 그런 말을 건네온다면 어쩐지 조금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
그렇게 매정하게 내치듯 단정해버리면 대화는 벽에 부딪쳐 툭 끊기고 만다.
내가 그 커플을 또렷이 기억하는 까닭은 옆에서 보기에도 그런 미묘한 거리감이 매우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그 당시 나는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좀더 제대로 된 말을, 뭔가 좀더 확실하게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도쿄지하의 흑마술]
인간은 마땅히 자유로워야 하며,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존재해야 한다.
그 말을 소리내어 뱉으면 아마도 자기 안에서 뭔가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평소화 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인생 가운데 구별할 수 없는 단 하루였을 뿐이다.


[공생을 원하는 사람들, 원치 않는 사람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폐쇄성을 납득하고 허용하는 것으로 개방성의 원리를 유지해나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피와 살이 담긴 말을 찾아서]
상대가 들려주는 말만 문장으로 늘어놓는다면, 그래서는 피와 살이 담긴 인터뷰가 될 수 없다. 어디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출처를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모두가 각자 심오한 인생을 사는구나'


[번역하는 것과 번역되는 것]
그보다는 앞을 내다보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좋은 부분은 대체로 잊어버리고 불만이 있는 부분만 유난히 기억을 잘합니다.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내 안의 <파수꾼>]
세상과 원만하게 타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평가의 축을 제 안에 정립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며 우울해하는 한 소년의 모습이 -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팀 오브라이언이 프린스턴 대학을 찾은 날]
"아니 왜......"라고 물어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당연한 일인 듯해서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중독적인 '씹는 맛']
거칠면서도 유려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친절하고, 전투적이면서도 인정이 넘치고, 즉물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서민적이면서도 고답적이며,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고, 남자 따윈 알 바 아니라면서도 매우 밝히는, 그래서 어디를 들춰봐도 이율배반적이고 까다로운 그 문체가 오히려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다.


[레이먼드 카버의 세계]
그는 혼자서도 많은 이들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 혹은 스스로에게 더 깊은 얘기를 건네기 위해 평명하고 간결하며 일상적인 언어만으로 소설을 쓰고 또 시를 썼다. 그것이 작가로서 그가 취한 일관된 태도였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사실성
'이 사람은 소설을 쓰는 데 한 치의 과장도 없이 진지했구나'


[기량있는 소설]
"어니스트는 아무래도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게 특기인 것 같다"


[올바른 다림질 법]
영화란 신기하게도 줄거리나 배우 이름은 다 잊어버려도 단 하나의 장면만은 도무지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영화 줄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도 많다.
사람이란 다양한 것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감탄하는 존재다.


[잭 런던의 틀니]
아무래도 개인적인 교훈이란 얻으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 듯하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도정을 지나 꽤나 당돌하게 별안간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다.


[바람을 생각하자]
 "그리고 그는 베개에 머리를 깊이 파묻고 두 손으로 귀를 감싸쥐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 바람을 생각하자, 라고."
"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
인간이 진정으로 바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네 인생 중에 아주 짧은 한 시기뿐일 것이다.


[다른 울림을 찾아서]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음녀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새로운 음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It can't be any new note. When you look at the keyboard, all the notes are there already. But if you mean a note enough, it will sound different. You got to pick the notes you really mean!)"
그래,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폼나게 나이들기는 어렵다]
당신이 소설가고 어딘가로 진정으로 가로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이를 잘 먹는 것은 어려운 일 같습니다.
'은퇴'라는 것도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내 페이스를 확실하게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내 생각의 전부입니다.


[포스트코뮤니즘 세계로부터의 질문]
필요치 않은 것을 무리하게 쓸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나는 명백한 결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사랑 없는 세계]
모르는 게 있을 때 '그건 무슨 뜻인가요?' 하고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건 아주 바람직한 태도란다.


[덤불 속 들쥐]
고생스럽다면 이미 취미가 아니겠죠.


[유연한 영혼]
나는 늘 어떤 이야기가 될지 예상하지 않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멀리까지 여행하는 방]
공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세상사를 서로 나눠가진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다들, 살면서 어떤 하나의 소중한 것을 찾아헤매지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혹시 운 좋게 찾았다 해도 실제로 찾아낸 것의 대부분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고 추구해야

만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의미 자체가 사라져버리므로'
달리 말해 내 방은 내가 있는 장소를 벗어나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이야기와 나의 문체]
내게는 써야 할 나의 이야기가 있고, 활용해야 할 나의 문체가 있었다. 남은 일은 힘을 모아 그저 꾸준히 써나가는 것뿐이었다.


[얼어붙은 바다와 도끼]
"생각건대, 우리는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책만 읽어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만 한다."


[이야기의 선순환]
이야기란 이왕 할 바에는 잘 해야 한다. 유쾌한 이야기는 철저하게 유쾌하게, 무서운 이야기는 철저하게 무섭게, 장중한 이야기는 철저하게 장중하게 해야 한다.
이야기 속에서는 수많은 신비로운 일이 가능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잡문집. 제목이 잡문집이라니.. 하..
그런데도 어쩐지 그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
잡문집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하루키 아저씨는 29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오히려 음악에 빠져 살았다는 것이다.
힘이되어주어 고마워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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