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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잖아_/Diary_

사랑은 다녀간다

 

사랑이 다녀갔다.

16년이나 지나버린 처음 사랑,

사랑은 늘 다녀간다.

이유없이, 기척없이,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렇게 살그머니 왔다가.. 몹시도 매섭게 떠나간다.

 

1997년 봄날,

딱 이맘 때 즈음..

그랬었다.

운명처럼 왔다가, 꼭 운명은 아니었던거라며,

그렇게 보란드시 핥아버린 마음이었다.

 

살랑이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그머니 왔었다.

그리고 언제 스치고 지나간지도 모르게 살그머니 사라졌던,

만개한 꽃잎의 흐드러진 수줍음처럼

그렇게 순수했던 사랑 한조각은 그렇게 16년이 지난 지금의 봄날의 내 마음엔 여전히 그 순간이 수줍게 남겨져 있다.

 

2216..

그 번호가 휴대폰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깊은 밤 이었다.

그는 여전히 서툴었다.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들어 있음에도 그는 여전히 나에게 서툴렀다. 오래전 그 때 처럼..

 

그도 나도,

이제는 서로의 엇갈린 삶을 받아드리고 그렇게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나에게도,

죽을때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순수했던 그 마음 한조각이 있음을 알기에,

보지 않아도,

잊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문득 그 마음이 그리워지고, 떠오르면 기억하고 목소리를 듣고,

그렇게 누군가 지구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은.

그것은 몹시도 이기적인 듯, 최고의 배려인 것이다.

 

죽을때까지,

다시 얼굴을 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패이고,

나이가 다 차서, 할머니가 되어,

이 세상과 안녕을 고할때,

그 순간에 가장 순수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떠올리며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봄날의 수줍은 분홍 꽃잎같은 포근함 같은 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슬프지 않다.

가장 순수했던 그 사랑 앞에서도 뒤돌아 설 수 있었던,

언제든 외로운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그 시간들 그 느낌들이 있기에,

고맙고, 고맙다.

그 순간의 눈물과 아리던 마음조차도 몹시도 고맙다.

 

그대도, 나도,

잠시 또 잊고 살자.

잠시 봄날이 그리웠다 치자.

그리고 우리 담겨진 말들일랑 아껴두자.

아무 말도 말자.

숨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까지는 참아내자.

어느날인가 내가 전화해 날 만나달라 청하면, 그때는 아무말 없이 날 찾아와 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의 봄을, 여름을, 가을을, 그리고 겨울을 이야기 하자.

그날에 그대의 네 계절을 듣고 싶다.

1997년 몹시도 따스하고 화려하고 숨막히게 떨리던 그 날들의 그대의 마음을 듣고 싶다.

 

사랑은 다녀간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도 모른채..

그렇게 다녀간다.

 

내것이 그랬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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