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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편지1


반 고흐가 남긴 편지를 통해 열정 가득한 그의 삶을 만나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장 로날트 데 레이우가 선별하고 해설한 빈센트 반 고흐의 서간집『고흐의 편지』제1권. 서른일곱 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주요 편지 백여 통과 함께 직접 편지에 그려 넣은 소묘를 수록한 책이다. 생애의 여러 시기를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편지를 발췌하지 않고 가능한 전부 수록하였으며, 원문의 언어와 불분명한 편지의 날짜, 편지의 고유번호까지 꼼꼼하게 명시하였다. 사람들이 부분으로만 알고 있는 저자의 비정상적인 사랑과 광적인 행동,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였으며, 서간집의 문학적 의미와 특성을 명쾌하게 설명한 해설을 통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주고받은 편지는 빈센트의 삶을 풀어 놓은 책 [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에 비하면 재미가 사실 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빈센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이해하는데는 무척 도움이 된다.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제법 되는 것 같다.


참 재미있는건, 이 시대에 그려진 그림들이 모델을 세우고 그려진 그림이라는 점이다. 난 당연히 그냥 스치듯 눈에 걸린 형상을 보고 눈에 담아 그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 모델을 고용하고 작가가 요청하는 포즈를 취하면 그 대로 화폭에 담았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텐데... 그 시대적 환경을 생각해 볼땐 몹시도 놀라운 점!!!

극히 개인적인 생각, 고흐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으로 책이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밑줄긋기]

반 고흐는 '근거도 없이 아는 척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척 난감해진 사람이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순교자의 삶을 택하고 싶지는 않아. 내가 항상 목마르게 찾은 것은 영웅적 행위가 아니야. 그런 자질도 없고......"


농촌 생화을 그리는 화가이자 '현대 초상화가'로 알려지길 바랐던 그의 야망은 어뚱하게 예술의 순교자로 그리고 미친 사람 이미지로 변질되었다.

반 고흐가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친밀감 덕분이기도 하다.

사후 100년 동안, 반 고흐의 사상이 시대에 뒤진 것으로 보이기는커녕 역사적 인물의 묵상으로 보이는 까닭은, 그가 사소한 것이나 유행, 덧없는 세상사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정과 만남에 굶주린 반 고흐


창조적 상상력이란 측면에서 반 고흐의 특별한 재능은, 자신의 문학적 레퍼토리를 핵심 구성 요소로 결합해 내는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구도 언급하지 않던 사람이지만 그의 단어의 울림에서, 파란 하늘과 올리브 나무들이 부드럽게 끌어안고 뒹구는......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프라스 사람"


그가 생각하고,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고 특수성을 전형화하는 것이었다.

종종 문학작품에서 따온 구절을 곁들였다. 이런 식으로 조화로운 효과를 거두려고 안간힘을 썼다.

초기 편지에서 서정적으로 언급했던 디킨스의 담쟁이덩굴 묘사를 그는 파리와 생레미에서 그린 찬란한 '덤불' 연작을 통해 뒤늦게 우러러본다.


반 고흐의 성숙한 예술 작품에서는 보색의 사용이 압도적으로 두드러진다. 또 편지에서 반복되는 대다수 주제도 엄격한 양극적 체계를 이룬다.


"그를 통해서 그를 높이 평가하는 여러 화가들과 만났지만 (......) 더구나 형은 아량이 너무 넓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만 하니까.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고약한 것도 없어."


고흐의 편지

The Letters of Vincent van Gogh


"마음껏 감탄하려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감탄하지도 못 하지"

산보를 꾸준히 하고 한결같이 자연을 사랑해야지, 바로 그것이 예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바른길이니까.

나처럼 너도 행복한 성탄절을 보내길 빈다.

그렇게 아우야, 잘 지내라, 곧 편지 쓰마. 그저 두서없이 적었으니 가려서 알ㅇ듣길 바라마.


세사엔 사람들의 짐작보다 사랑할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거겠지.

'늙은 여자는 없다!'(노파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여자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늙지 않는다는 뜻이지)

여자는 남자와 '전혀 다른 존재'인 데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존재이니까,

이곳 풍과은 매우 아름다워서 번뜩이는 눈이 아니라 그저 소박하고 좋은 눈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그런 눈으로 본다면, 어디든 아름답거든.


우리, 하느님 속에서 부유해지도록 기도하자.


네게도 내게도 즐거울 말 한마디 해볼까. 네가 읽을 책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꼭 그렇게 해야 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거야. 하지만 편협해지지 않도록 해야지. 아무리 잘 쓰인 책이라도 두려워하지말고 읽어야 해. 인생에서 그런글은 위로의 샘이니까.


반 고흐는 괴장히 잘 걷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니야, 하느님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니까."

"그분이 서로를 가깝게 묶어줄 것이고 또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린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묶일 것이니"라고 기대 해야지.

"슬픔 속에서도 기뻐하라," "모르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는 말을 잊지 말자. '우울'이라는 말을 두 마디로 나누어 쓰자. '감탄과 용기'라는 말로


나는 네가 탄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바라보았지. 우리는 이미 이렇게 오래된 친구인 거야.

꽃들과 늘 푸른 소나무, 담쟁이덩굴과 산사나무 생울타리는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이것들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했지.

너한테 내 계획을 글로 적어보니 내 생각을 확실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성경 말씀이라는 보물을 내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느님 아버지께서 네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실 것다. 기도하는 사람 위에서 우리 마음을 보시는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신다. 그분의 바법은 우리 방법보다 더 고상하고, 그분의 생각도 우리 생각보다 더 고사할 뿐 아니라 이 땅 위에 펼쳐진 하늘처럼 높기 때문이지. 저 높은 곳에 거하며 우리에게 위안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이 함께하길 빈다.


담쟁이는 "날개 없이도 기어오른다는 것"을 명심하자. 담쟁이가 담을 기어오르듯이, 펜으로 종이를 더듬을 거야.

누구나 이렇게 자문할 거야. 그것을 내가 언제 해낼 수 있을까?

누군가 자기 일을 할 떄, 사고와 관찰이 미흡하면, 더 능력이 뛰어난 이의 축복과 지도를 받아 자신감을 키워야 해.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밀가루 반죽에 효모를 넣는 것 같은 일이야.

그저 하느님을 믿고, 그 믿음에 매달리고, 그분께 맡기자꾸나.

 

언젠가 단단한 바위도 금이 가고

큰 산도 뚫리겠지만

내가 너희에게 한 약속은

진실로 흔들리지 않을지니.(찬소가 188:1~2)

 

우리는 일사에 감사하자. 실로 범사치 않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오직 선량하게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도하자.

 

진실한 작업을 해온 사람은 죽기 전에 알려져야 해. 최소한 몇 사람이라도 그를 기억하고 살면서 나중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거야. 좋은 작품도 영원하지 못하겠지만, 그 작업으로 표현된 생각은 영원할 것이고, 작업 그 자체는 틀림없이 오래 살아남을거야.

"어제의 우리가 바로 오늘의 우리"라고 말한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들이었어.

 

우리가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무슨 일이든 최상을 지향하게 되지 않을까. 비록 불가피하게 버거운 고난과 환멸을 맛보게 되더라도 말이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사랑해야 해. 진실한 힘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야.

읽으면서 감동하는 까닭은, 소박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야. 가령, 쓸데없이 쉽게 늘어놓을 수 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깊은 울림이 있는 말을 조금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할뿐더러 자신을 굳게 믿는다.

우울도 좋은 경험이겠지.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고민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그런 경험이 더 많은 편이 좋을지 몰라. 좌절을 모르는 사람에겐 약이 될 테니까.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사람은 결국 친구를 얻고 절대 혼자가 되지 않겠지......

 

좋고 소중한 것이라는 이전 감정을 다시 느꼈다. 오랫동안 느끼던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살아있는 기분이었어. 내게 인생이란 점점 더 보잘것없고 삶 자체가 그닥 중요하지도 않으며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또 끌리는 감정이 있을 때는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쓸모없거나 소모적이지는 않으며, 어쩌면 어딘가 유용하리라고 생각하게 되지. 우리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필요해. 여행의 동반자처럼 함께 먼 길을 가고 있으니까.

 

우리가 동의하든 않든 간에 혹독한 날씨는 결국 지나가게 마련이고, 아침이면 바람이 바뀌고 포근해지지. 기후처럼 변동이 심한 우리 심정과 날씨를 비교해 보면서 사저이 나아지리라는 희마을 갖게 돼.

네가 내게 조금 낯선 사람이 된 것처럼, 나 역시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낯선 사람이 되었을지 몰라.

새들이 털갈이 할 때처럼 말이지. 그런데 이런 시간은 우리 인간에게는 불행해. 힘든 시간이지. 털갈이 철을 순조롭게 넘길 수도 있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일을 공개적으로 해선 안 돼. 재미있는 일도 못 되고 위축되기 때문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오해보다야 진정한 이해가 좋지.

부족한 것이 가진 것보다 훨씬, 무지무지하게 많아. 그렇다고 해도 내가 침체돼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항상 마찬가지야, 우리가 왜곡하지 않고 사물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독창적인 인간의 장점을 살려 균형 잡힌 비교를 한다면 말이지.

보기를 배우고, 살기를 배워야 하듯이, 읽기도 배워야 해.

하지만 아무리 초조하더라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분간 기다리라는 거야. 누군가 와서 어떤 사람의 불가에 앉고 싶어할 때까지.

 

이 여행으로 녹초가 되어, 발은 마비되고 침울한 심정으로 돌아왔지만 후회는 없어. 흥미로운 것을 보기도 했고 끔찍한 고생덕에 다른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으니까.

여러 분야에서 그렇겠지만 특히 소묘에서는 "느긋함보다 서두르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해.

책 속에서라면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 직접 겪는일이라면 분명 즐거울 리 없을 '하찮은 인생살이'에 적잖이 시달리게 됐어.

할 말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이해하게 될거야.

 

마침내 그녀도 나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그녀를 사랑하는 것.

그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녀는 더욱더 자주 나타나네.

 

여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하고 선량하면 남자에게 덧없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을 줄 수 있어.

테오야,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삶의 자취를 남기고 사라져버린 것에 무한한 매력을 느껴.

 

두 분이 자기 주변에 사막을 만들어 나가는 한,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노년을 보낼 수도 있는데도 불행을 자초하는 한 말이야.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두 분이 수많은 날을 씁쓸하고 외롭게 지낼텐데 나는 그게 두려워.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건 제멋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나도 별수 없이 그 말을 쓸 때가 있지만, 사실은 사물의 다양한 측면을 두루 생각하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이성과 상식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가시는 내가 간직하고 부모님께는 장미꽃만 보여주는 게 최선이란 말이야.

날씨가 좋든 나쁘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규칙적으로 그림 그리러 나갈 거다.

인물에서든 풍경에서든 감상이나 우울이 아니라 깊은 고민을 표현하고 싶어. 요컨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이렇게 말했으면 하거든, 이 사람은 깊이 느끼고 있구나, 강렬하게 느끼고 있구나.

어쨌든 원한이 아니라 사라에서, 정념보다는 태평함에서 나온 감정이지.

화가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하거든.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한 말이야.

 

모든 것이 비에 젖은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 오기 전이나 비 내리는 중이나 그 후에도. 한바탕 소나기조차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겠더라.

"난 아무튼 이거든 저거든 해야 했다."

밀레가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저 "어쨌든 이것이든 저것이든 해야만 한다."는 자세지.

 

나는 원칙적으로, 좋은 것, 진실한 것, 생각이 올바른 것을 그리고 싶어. 자연을 너무나 사라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런 문제에 부딪치잖니. 더 높고 좋은 것에 이르자면 더 많은 습작을 해야 한다고.

나는 네 의견을 흘려듣지 않을 거야.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지적하는 것보다 그 무엇을 바꾸기가 더 어려운 법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스스로 찾아내기'야말로 독학하는 화가의 유일한 길이었다.

"진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또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도."

우리가 자연앞에서 둔해지는 느낌이 들거나 자연이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 듯할 때가 있다고. 그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사람이 자신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행동에 원칙을 맞추느냐 하는 것은 우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처럼 정의하기 어려운 것 같아.

 

나는 사랑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해. 사실은 되레 사랑할 떄 더 분명하게 생각하고 전보다 더 활력에 넘치게 되거든.

나는 나를 물러서게 하려는 것은 무엇이든 피할거야.

인생이란 얼마나 슬픔으로 가득한지. 그래도 주눅 들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야지. 옳은 일을 해야하지만, 오직 실천해야만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어.

 

돈이야 갚을 수 있지만 네 친절한 마음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겠니.

그래 아우야. 갈림길은 늘 있게 마련이더라도, 내가 네 친구라는 것을 잊지 마라.

문은 열려 있든 닫혀 있든 둘 중 하나겠지.

 

"색의 법칙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데 그건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지."

나는 그녀의 외모보다 내면에서 위대한 그 무엇을 보았다.

고통을 참고 싶지는 않다. 종종 예술가들은 그것으로 가장 힘껏 자신을 표현하니까.

나는 농촌 생활의 화가다, 이건 사실이고 내가 그런 화가로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너도 분명히 알게 될거야.

실제 형태를 왜곡하고 재해석하고 변형하면, 그래, 거짓일지 모르지만 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이지.

 

테오야, 내가 앞날을 어떻게 예언하겠니, 하지만 만사는 변하게 마련이라는 영원한 법칙쯤은 알아. 십 년 전을 생각해 보자. 만사가 달랐지. 주변 사정도 사람들의 분위기도,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달랐어. 또 이제부터 십 년이면 다시 달라지고 말겠지. 하지만 일은 남아. 일을 했다고 해서 후회할 리도 없을뿐더러 활동적일수록 더 낫지 않겠니? 나는 빈둥거리면서 아무 일도 않느니 차라리 당자 무언가를 해서 실패하는 편을 택할 거야.

 

형식적이고, 광적이며, 위선적인 말로 솜씨 이야기를 지껄이도록 하라지. 진정한 화가는 감정이라는 이름의 의식을 길잡이로 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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