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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하는일엔 행운이 따르죠_

왜 교회는 예수님의 세족식을 왜곡했을까?(오대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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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는 예수님의 세족식을 왜곡했을까?(오대식)

sori4rang_ 2015.07.25 20:33

 

이번 말라위 여정에 함께 하게 되었던 오대식 목사님과 김영숙 사모님.

두분을 만난건 내 신앙생활에 있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한 조각이 아닌 삶 전체를 내어드리는 삶을 실천하는 두 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 감사했다.

무엇보다 영적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목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조용한 움직임과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 있던 그 의미와 마음의 깊이와 넓이가 되새겨져서 더 은혜가 되었던 시간이다.

 

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대를 떠나 올바로 예수를 믿는 다는 것,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말씀을 왜곡하며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며 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 시대의 교회는 고상하려고 들고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모태신앙인 나조차도 교회가 불편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돌아보면 교회에 크리스찬만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세대이기에, 때론 땅끝은 교회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소 불편할 법한 이야기들이 말씀을 통해 풀어져 있어서 내겐 시원하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말씀을 올바로 앎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바로 잡아가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이든다.

 

본문 내용중에 오래 살고 싶은 이유에 대해 적어내려간 저자의 고백이 있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정말로... 정말로...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내겐 만회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말라위에서 강지헌 지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셨다던...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바로아는 것... 그리고 작은 예수로서의 흔적 Stigma을, 향기를 남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귀한 책을 만나게 하신, 또 귀한 믿음의 선배를 만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

 

 

바르게 깨달아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삶의 프레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이 닥칠 때 성경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일컫습니다.

우리 삶의 기준이 주님의 말씀으로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바르게 깨달아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부 교인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1. 예수님을 의심한 세례요한은 제정신이었을까?

세례 요한의 영적 감각을 잃은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의 능력으로 많은 변화들이 요청되고, 또 이루어지지만 정작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흥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를 좇아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소망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마음을 읽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힘으로 예수님을 전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힘을 내려놓음으로 예수님을 보이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한자리 차지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차지했던 그 편안한 자리도 포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부요하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무엇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2. 탕자의 비유에서 얻는 교훈, "주님께 돌아오면 다 된다?"

탕자의 비유에서 무서운 '신성모독 죄'를 읽는다

 

우리도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생명을 얻고 살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계획과 결정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큰 신뢰는 아버지의 생각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는가?'

 

그런데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는것일까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의 두 가지 특성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아버지의 마음을 갖는 것과 아버지의 생각과 계획과 결정을 신뢰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며, 하나님이 결정해 주신 그 길이 내가 계획한 길과 달라도 끝까지 신뢰하며 따라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바로 그런 아들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3. 예수님을 깨워도 여전히 나는 문제투성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아직도 내 삶에서 대립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를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제한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한배에 있어도, 예수님을 깨워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문제 해결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방법이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성의 믿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세상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 생각보다 훨씬 좋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풍랑이 일어 죽게 될 만한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의 문제 해결법은 창조주답습니다. 그러기에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풍랑 가운데서도 잠을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믿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주님의 인성을 뛰어넘어 신성을 보아야 합니다.

 

 

4. 낙타와 바늘귀 비유는 왜 부자만 공격할까?

부자와 가난한 자,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복을 가지고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려 할 때 하나님이 주신 복은 더 이상 복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순간, 천국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낙타와 바늘귀 비유는 부자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교훈인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대상이 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돈은 여러 가지 복의 아이콘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가장 소중한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5. 실로암에서 우리는 성경을 못 보는 맹인이 된다

신앙인들이여, 정말 행복한 삶이 보이는가?

 

구원의 삶을 위해 때로는 세상의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감히 예수의 은혜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좇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은 구원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6.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린 양이 이리를 이길 수 있다고?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위험해도 기회가 오면 투자를 합니다. 100%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어느 정도 보이면 실패를 무릅쓰고라도 투자를 합니다.

사업가의 논리로 볼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크게 되기 위해서는 고난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일을 맡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우험 요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인가?'

 

순교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고, 내 안의 무엇인가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순교적인 삶을 살 때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7. 우리 마음에서 부활하지 못하는 부활 신앙

부활 신앙은 단지 죽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의미는 생명이 죽음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생명은 죽음을 이깁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의미는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의미는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미움에 사랑으로 대하신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미움을 이깁니다. 부활이 주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부활의 의미는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로써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가져야 하는 삶의 기준이요 자세를 의미합니다. 생명이 죽음을 이긴다는 것이고,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이고,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는 것이고,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이란 우리 삶의 모든 기준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달라지고, 복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눈이 떠져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보는 각도가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2부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

8. 부자 청년은 단지 재물이 아까웠을까?

부자 청년의 삶에서 읽어야 할 한국교회의 율법주의

 

신앙인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군사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기는 세상의 가치관과 싸우는 용기를 말합니다.

 

 

9.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엉뚱한 기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목회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주님 외에 참된 목자는 없습니다.

목자란 세 가지 역할을 내포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지키는 것, 이끄는 것, 그리고 먹이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가?'

이유는 주님이 지켜 주시려는 것과 우리가 지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건강과 재물, 그리고 편안한 삶과 생명을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를 지켜주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 하십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에 꽉 붙어 있도록 지켜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무엇인가 지킬 것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것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이리에게 물려 가는 우리를 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황에 있어서 온통 재물과 건강과 편안과 성공이 복의 개념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이리에게 물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빼앗겨 세상의 가치관에 물려 가도록 놔두는 자들은 다 삯꾼 목자입니다.

 

 

10.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는 왜 시한부 종말론만 볼까?

"회개 안 하면 죽는다!"가 한국교회를 망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시작점은 바로 회심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회심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살아 있음의 의미'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어야 하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참으시는 중에 한 해 더 살려 두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뿐이야'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가라앉을 때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오'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헌석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제게 친구가 없는 이유는 '친구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인생을 만회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제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들, 열매 맺지 못한 게으름들, 아무 의미 없이 보낸 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너무도 커 보이기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기간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죽어 하나님 앞에 서면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부족했던 삶을, 부끄러웠던 과거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던 삶을 만회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한 시간 싸우면 두 시간을 만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만회하는 열매를 맺기 위한 시간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외침의 참 의미는 우리의 남은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1.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만 하는 사람들에게

성전에서 휘두르신 채찍의 끝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세 가지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과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가정과 교회는 그 틍성이 같습니다.

제물 중에 제물은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제일 먼저 성전에 가신 이유는 자신이 그 성전의 제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내 것을 희생하려 하지 않고 챙기려 한다면 주님은 그것을 잘못되었다 여기십니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 내것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얻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아래 놓인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꼐 기도를 하는데 그기도가 나를 위한 이기적인 기도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들리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내 뜻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희생 제물의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뜻을 죽이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것이 진정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라 똑같은 정신이 흐릅니다. 가정이 가정 되기 위해서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희생은 가정을 손수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내 마음을 죽이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참된 기도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휘두르신 채찍에는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려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12. 왜 교회는 예수님의 세족식을 왜곡했을까?

세족식은 사랑과 섬김의 본에 그치지 않는다

 

세족식에는 섬김과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너는 아직 모른다. 후에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인도를 받겠다는 표현입니다.

"내가 2주면 갈 수 있는 너의 인생길을 40년 동안 광야의 길로 인도할 텐데 그래도 너는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

"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신을 벗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신을 벗고, 내 발을 주님의 손에 맡겨서 주께서 내 발을 씻어 주시도록 놔두는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순종의 표현힙니다. 그 길이 혹 내 생각과 달라도 순종함으로 걷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이 나의 계획보다 정확하기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력' '내 신이 걸어온 자국'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세족식은 섬김의 의미를 넘어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맘모니즘과 단호히 싸워야 합니다. 힘과 권력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 없이 싸워야 합니다. 섬김의 대상과 싸움의 대상을 제대로 구분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우리의 발을 붙들어 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세족식은 전투에 나가는 군사에게 출정식과도 같습니다. 믿음으로 세상과 싸우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함께하겠다는 용기를 주는 의식입니다. 그 발걸음을 부들어 주겠다는 약속의 행위입니다.

세족식은 단순히 섬김에 대한 가르침만이 아닙니다. 섬김에서 더 나아가 믿음으로 치열하게 이 세상과 싸워서 이기라는 주님의 용기의 메시지입니다. 고통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주님의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13. 베데스다 못에 비친 한국교회의 자화상

무한 경쟁 구도가 상처 입은 교인을 치유하지 못한다

 

한 번의 예배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많은 피로를 느끼는 이유는 몸의 완력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정신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상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경쟁이 사람과 사횔르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한 주간 내내 경쟁의 구도 속에서 지친 생활을 하다가 온 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의 문제를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것을 온전히 행하지 몫하는 이유는 교회 스스로가 이미 경쟁 구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방식이 경쟁이듯 신앙생활도 경쟁하듯 합니다. 그래서 참된 안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예수님의 행동이 어떻게 구원을 말해주는지를 섬세하게 설명한 복음서입니다.

경쟁 구도에 끼어 지쳐 있는 한 사람을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는 단지 "병이 나았으니 일어나 걸어 봐라!"라는 말씀만이 아닙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경쟁의 자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은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 혹은 '자비를 얻은 자'입니다.

자비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경쟁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경쟁의 삶을 살던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그 삶의 방법을 내려놓고 이웃을 돌아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비를 얻은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경쟁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하십니다. 그 자리를 벗어날 떄 우리의 오래된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경쟁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치유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 안식의 의미입니다.

안식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행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14. '메시아 비밀'은 지금도 여전히 비밀

여전히 힘의 논리를 갖고 있는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참 이상하게도 병자를 고치신 다음에는 항상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춰야 드러나고 은폐해야 멀리 간다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드러내야 알려지고, 될 수 있는 대로 나타내야 멀리 간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이와 달랐습니다. 이것을 '메시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비밀스럽지만 결국 가장 빠르게 세상으로 전파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방법을 나타내는 말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법칙

그것은 감춰져야 알려지고, 낮아져야 높아지고, 가난해져야 부요해지고, 약해져야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질서를 잡을 수 없습니다. 힘으로는 평화를 줄 수 없습니다.

 

말 여물통에 누우신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평화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무 힘도 없고 무능해 보이는 희생과 낮아짐으로 진정한 생명, 진정한 구원을 우리엑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성품이 그 마음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 된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반대입니다. 낮아지는 것이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져서 평화를 이루는 것, 우리가 희생해 생명을 전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엑 그러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어떻게 생활할 때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삶의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르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복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그 힘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도 모릅니다.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커진다고 반드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으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으면 아무리 예배당이 커도, 아무리 세상의 힘이 많아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교인수가 많아도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힘은 바로 메시아 비밀입니다. 예수님이 마신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고,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곳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가 엿보여야 합니다. 그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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