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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다니엘 김)

프롤로그 ㅣ 이기는 자로 부르시다

이기는 자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

한 영역의 승리가 모든 영역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복음의 본질은 통치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에게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전해주는 좋은 소식인 것이다.

'통치'는 한 영역에서의 성공이 아닌 본질적으로 '모든 영역을 초월한 승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분의 본질을 피조물이 공유하게 되었다. 통치자의 형상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창 1:28참조)

 

회복된 이기는 자의 형상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그 권세를 회복하신다.

"이것으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우리에게 허락하신 권세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었다는 약속이다.

 

천국은 비겁한 자, 비굴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두려움조차 정복하지 못하는자, 자신의 배고픔을 뛰어넘지 못하는 자, 자신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 이런 자들에게 천국은 허락되지 않는다.

천국은 '이기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한 자들의 유업이다.

오늘 '이기는 자'로서 살아내지 못하면, 나는 주님과 상관이 없을 것이다.

 

1 PART 이기는 자는 '충격적인 복음을 만난 자'다

내가 살지 못하는 인생을 그분께서 대신 살아주셨고, 내가 그렇게 못 살기에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을 그분께서 대신 죽어주셨기에 나는 그분 안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이 얼마나 위대한 현실인가? 이러한 구원을 맛본 자들만이 흔들리지 않는 기쁨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chapter1 복음으로 세상과 승부한다

복음, 세상과 승부하는 예수님의 능력

이 세상에 사는 크리스천의 삶 자체가 고난과 고통과 뼈저리는 아픔과 긴장감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인(self)영역, 관계적인(inter-relational)영역

개인적인 영역이란, 한 사람이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영적인 갈등과 정신적인 갈등, 육체적인 갈등을 말한다.

복음이야말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과 승부하는 용기의 원천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에 대하여 침묵하게 했다.

율법적 의무가 아닌 복음으로 죄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적이 있는가? 나를 위해 아낌없이 생명을 던지신 그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보다도 복을 받기 위해 혹은 벌을 피하기 위해 순종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참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복음,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의 광채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Christ)인 것이다.

복음이란 그리스도가 소유하고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광채는 스스로를 나타낸다(self-revealing).

결국 우리의 삶이란 자신이 발견한 흠모의 대상을 추적하는 삶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도 복음으로써 우리를 이렇게 개유(allure)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영광, 복음만을 바라보며 추적하는 삶을 살아나갈 때, 비로소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개인적인 영역과 관계적인 영역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 어떤 전쟁터에서도 우리는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복음이야말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과 승부하는 넘쳐나는 용기의 원천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누리기 위한 첫걸음인, 복음의 광채를 목격하기를 원한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도하기를 갈망하자.

 

두렵고 떨리는 구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 24)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종교의 법칙을 파괴하는 예수님의 능력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똑바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너의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을 바라보라. 너는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분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여호와 앞에서 애통하라! 그리하면 너는 그토록 너를 사랑하신 분을 위하여 사나 죽으나 충성하게 되리라!"

 

내가 살지 못하는 인생을 그분께서 대신 살아주셨고, 내가 그렇게 못 살기에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을 그분꼐서 대신 죽어주셨기에 나는 그분 안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동기를 바르게 하라

동기(motivation)

행위를 왜 하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동기)를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4:23)

주님 앞에서 '나의 참된 동기는 무엇인가'를 점검해봐야 한다.

복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방법론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잃는다고 해도 예수님을 얻기 위한 동기로 살아나가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삶의 궁극적인 목적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동기)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139:23)

 

성화, 참된 경건의 능력

성화(sanctification)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영광의 광채를 목격한 사람은 포장된 거룩함이 아니라 참된 경건의 능력을 갖게 된다.

미치도록 사랑할때 일어나는 변화

"제가 많이 용서받았으니 이제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위대한 복음을 맛보았으니 이제 제가 사랑하는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바로 살겠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의 원천

참된 능력이란 무엇인가?

능력(power)이란, 끊임없이 변해가는 다양한 상황에서도 불변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내가 의지하고 있는 능력의 유효기간이 내일은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이다.

그렇지만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영향력을 잃고, 자원이 바닥나며, 그것이 더는 유효하지 못할 때,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불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참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과 열심이라는 기준으로만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헌신은 지금도 불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헤세드(hesed)

변함없는 사랑(steadfast love)

하나님의 신실하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hesed)은 영원하시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손을 잡고 계신다는 뜻이다.

 

돌이켜 회개하는 힘

회개(conversion)

복음의 사람은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다.

참된 복은 그 누구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그 참된 복이란, 그들의 삶의 동기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렇다면 왜 회개하는가? 그들은 죄의 대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동기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에 회개한다. 그들은 주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에 상처가 생길까 봐 두려워 떤다. 복음의 사람이 하는 진정한 회개를 다윗의 기도에서 들을 수가 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존하시다 하리이다." (시51:4)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 합격하느냐, 불합격하느냐의 문제에만 초점을 둔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이 그에게는 못 견딜 정도로 아프다.

얻어도 더 얻기를 원하는 나의 예수님, 사랑해도 더 사랑하기를 원하는 나의 주님을 붙들기 위해 그들은 회개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두 번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아프게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다 거두어가셔도 괜찮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주님 한 분만 다시 얻을 수 만 있다면 나의 물질과 명예와 건강과 생명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것이 회개이다.

 

복음을 위한 아름다운 전투

"이러한 복음을 나는 분명히 믿고 받아들였는데, 왜 나의 삶 속에서는 복음의 능력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까?"

절대적으로 경험인 것이다. 즉 복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복음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누리는 만큼 변화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경험하자. 경험은 믿음의 첫발자국에서 시작된다.

복음을 위해 값비싼 희생을 치르자! 그분을 더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로 달려가자!

 

chapter2 믿음의 선두주자를 따라간다

인내

확신

주님 앞에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자.

 

치열한 싸움을 두려워 말라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선두주자를 바라보며 인내하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

온 세계에 당신과 함께 달려가는 자들이 있음을 기억하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히12:2)

 

'내가 그 길을 달려갔어. 그러니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어떻게 달렸는지를 한 번 바라봐라'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하늘나라는 없는 게 없으니까. 그런데 훗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하늘나라에 없는 게 하나 있었다. 예수님은 그 한 가지를 구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 바로 나다.

 

'내가 너를 위해서 어디까지 질고를 졌는지를 한번 바라봐라. 너를 위하여 내가 어디까지 아팠는지를 보고, 내가 그러한 아픔과 질고를 당하면서도 너 하나 즐거움 삼고 그것을 견뎌낸 것을 안다면, 너도 나를 하나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아서 이 고통과 고난과 아픔의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달려갈 수 있겠니?'

 

주님께서 아프신 만큼 내가 회복되고, 주님께서 파괴되는 만큼 내가 더 온전케 되기에 내려치는 채찍 속에서 아마 이런 부르짖음이 주님 안에 있었을 것이다.

인내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라봄의 자연스러운 열매다.

결단하는 것만으로는 끝까지 인내하지 못한다.

인내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마지막 시대까지 어떠한 환난과 고통과 고난과 아픔과 가난과 외로움과 핍박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그분을 바라보는 데서 나온다.

그분께서 무엇을 즐거움으로 삼으셨는지를 바라보라. 그분께서 그 즐거움으로 어떻게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셨는지를 보라.

'나를 바라본다면, 너도 인내할 수 있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내 인생이 불도저에 밀릴지라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확신'해야 한다.

오늘의 삶은 하나님 앞에는 만족이 아니다.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

우리의 인생이 흔들릴 때도 그것은 사랑의 징계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오는 징계와 아픔과 고통과 고난과 가난과 외로움 같은 요소들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다. 징계를 통과하며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가장 먼저 참으신 사랑이다.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12:3)

참는 것이 굉장히 큰 사랑이라는 뜻이다. 참는 사람은 애가 탄다.

애가 탄 하나님이 참으신 것이다.

자식의 사랑보다 부모의 사랑이 크기 때문에 사랑이 큰 부모가 더 참는다. 사랑이 큰 사람이 오히려 더 눈치를 보고 사랑이 큰 사람이 한 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주꼐서 우리를 버리셨나이까?"(You have forsaken us)

"주께서 우리를 잊으셨나이까?"(You have forgotten us)

'내가 오늘 다시 한 번 참고 있다. 난 널 잊지 않아. 참을 뿐이지 잊은 게 아니란다.'

 

죽기 살기로 죄와 맞서기

죽기 살기의 각오가 없으면 죄와 맞서 싸울 수 없다.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회초리를 드신다.

그렇게 기다리셨는데 그 권면을 우리가 멸시하면 드디어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회초리를 드신다. 그때의 채찍질은 분명히 사랑이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한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히12:5)

아플지라도 결국은 나를 해치는 손이 아니라 사랑의 손임을 잊지 말라.

 

버린 자녀는 징계하지 않는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12:7.8)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징계를 받는 것이니 기뻐하라.

당신에게 공격이 없으면 사탄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신다. 아버지의 손길이 사랑의 손길이라는 것을 안다면 고난 가운데 침묵하라. 내 자신을 주님께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신뢰합니다. 나를 빋으시든 파괴하시든 분명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나를 완성하실 것이고, 이 경주를 달려가게 하실 것이며, 내 인생을 통해서 주님이 영광받으실 줄 믿습니다. 저를 주님 손에 의탁합니다.

 

기꺼이 복종하는 이유를 알라

'주님, 주님의 본심은 내가 이렇게 고난받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판단했을 때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내가 복종하겠습니다.'

이게 공경이며, 이 자체가 예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결과를 다 알고 계씬다. 우리는 결과 위주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도니다. 결과는 이미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과정이다.

 

"결정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는데 잘못된 결정이라면 주님께서 그것을 닫으시고 다른 길로 인도해 주세요.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에배로 받으신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이걸 할까요, 저걸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이렇게 묻고 기도하고 고민하는 그 과정을 받으시는 것일 뿐, 결과는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셨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결과를 드리는 것이 안리 과정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 때문에 함부로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영광을 맛보라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10)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10)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쏟아부으셨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선택이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이다.

 

의와 평강이 지배하는 삶을 살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나를 완성하실 것이다. 이제 자그마한 이물질도 없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바라보며 인내하라. 끝까지 참으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히12:12)

다시 한 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도 그러셨다. 십자가에 잡혀가시기 직전까지 주님은 긴장을 풀지 않고 기도하셨다.

근신하는 삶

깨어서 분별하라는 뜻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지친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진다. 하지만 지쳐 있는 내 무릎과 피곤한 손과 육신을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일으켜 세운다면 판단력이 활성화될 것이다.

긴장하는 삶

안일함은 우리의 무덤이다.

주님 안에서 그 긴장을 풀지 말고 끝까지 근신하라는 것이다.

담대한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고침을 받게 하라'

'고침을 받으면 담대해질 수 있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어'

지난날의 상심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진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나의 과거를 납득하는 것이다.

'아, 이런 이유로 저를 여기까지 아프게 하실 수밖에 없었군요. 그래서 주님이 저를 혼자 두셨군요. 그래서 주님이 사랑하는 이들을 데려가셨군요.'

'새 힘을 내라'

'새로운 기름부으심이 없이는 새 시대를 감당할 수가 없어'

 

chapter3 자신을 쳐서 주님의 뜻에 굴복한다

인생을 뒤바꾸기 위한 씨름

모든것이 의도적이었던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사역에는 단 하나도 우연이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신 적이 없는데, 우리가 포기한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있고, 주님께 매달리고는 있지만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도 믿지 않는다. 나라와 교회와 가정과 자신이 중보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다. 내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회복을 향한 열정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말씀을 믿고 거기에 생명을 걸 정도로 단단히 각오하고 있느냐고 묻고 계신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드는 굴복 기도

주님의 뜻 앞에 굴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하나님은 한 번 정한 것은 절대 굽히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는 연단시키시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작품으로 만드신다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순금의 뛰어남은 용도가 아니라 본질이다.

훈련받음으로 모든 이물질이 다 제거되고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 남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본질만 남기기 위해서다. 그다음에 쓰시느냐 안 쓰시느냐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

연단받는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붙드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즉 연단받는 가운데 쓰임 받는 것이다.

 

언제나 신실하신 분

'어차피 너는 약속을 못 지킨다는 걸 알아. 언약을 지켜도 내가 지켜. 그리고 그 언약을 깨뜨렸을 때 네가 그 대가를 지불하지 못해. 그러니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나야. 잘 사는 것도 나고, 못 살았기에 죽음을 당하는 것도 나야.'

 

십자가를 준비하는 예수님의 기도

어차피 제자들에게 위로를 찾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면 아버지 한 분만을 바라보겠다고 결심하신 것이다.

그 나라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주님의 보응 외에는 다른 것을 바라지 마라.

 

"나도 무서워"(I'm scared, too)

그때 예수님도 두렵고, 무서웠으며, 외로우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회복을 꿈꾸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굴복시키셨고, 하나님만을 바라셨기 때문에 묵묵히 그 길을 달려가며 이기실 수 있었다.

 

2 PART 이기는자는 '끝을 알고 가는 자'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나의 보화로 삼고 그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오늘도 핍박을 받고 세상이 뒤집어져도 어려운 환경 속에 뜻을 굽히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chapter4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다스리는 자의 자리로의 초대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모든 약속의 대상이 '이기는 자'이다.

'이기다' 헬라어 '니카'

'정복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그것이 당신과 나의 본질이다. 우리는 이기는자,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이기는 자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3)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1,12)

 

섬기는 만큼 그날 우리가 진급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여기서 하나의 밀알로 썪어지는 만큼 그 나라에서 계속 진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둘다 살아 있을 수는 없으니 죄가 죽든, 내가 죽든 둘 가운데 하나가 죽어야 한다.

 

첫사랑을 회복하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 마음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으시다.

'네가 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이다.

네 마음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달라졌어. 네가 고백하는 그 기도에서 나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길이 차가워졌어'

당신은 지금 주님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어제보다 오늘, 주님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네게 처음에 있었던 그 사랑이 아직도 그대로 있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먼저 기억하라.

회개하라.

회개는 구체적인 행위로 돌이키라는 뜻이다.

잃은 것이 아니라 버렸다고 표현하신다. 잃은 것과 버린 것은 전혀 다르다.

결국 오늘도 선악과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한 걸음 주님께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타협할 것인가'

회개는 다시 한 번 잘못 선택했던 것을 돌이키는 것이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오랫동안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방법을 잊는다.

 

영적 기억상실증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개인적으로 올려드리고, 가정과 교회를 통해 올려드려야 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에덴동산은 처음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을 나눴던 곳이다.

우리는 주님께 '좋은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

'그것들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돌파하셨다. 기꺼이 십자가를 감당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주님 앞에 가장 좋은 것을 올려드려야 한다. 처음 사랑을 붙들고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네가 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너의 마음도 그렇게 기쁘게 뛰고 있니? 너의 사랑이 아직도 뜨겁게 유지되고 있니?

 

나를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시는 주님 앞에 사역의 열매가 없다 할지라도,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해도, 내가 꿈꾸던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해 보자.

 

주님과 함께 싸워나가라

좌우에 날선 검 The Two-Edged Sword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어린양 예수이지만 심판자 예수', '어린양 예수이지만 유다의 사자 예수', '희생양 예수이지만 우리에게 복수하실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받아들인 완전한 그림이 형성되었을 때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수고를 인정하시면서도 책망도 하신다.

주님은 그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라고 하시는 것은 엄청난 위로의 말씀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위로해 주시는 것이다.

 

'너희가 있는 곳은 사탄이 다스리는 곳이다. 너희가 어디에 사는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다 알고 있어. 지금은 믿음을 지키기 힘든 현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 이 시대가 너희들에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아. 네 앞에 있는 현실이 숨 막히게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어.'

충성됨을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신데, 내가 나 자신을 지킨다고 생각해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지금 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구나. 네가 나를 위해서 일하는게 아니란다. 내가 일하는 곳에 네가 오기를 원한다. 와서 함께 일하자.'

'지금까지 정말 충성되게 잘 섬긴 것을 안다. 네가 강팍해질 정도로 열심히 나를 위해 달려온 것도 알고 있단다.'

우리 주님은 수고한 것을 다 인정해주면서 책망하시는 분이다.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며, 격려하시면서 책망하신다.

혹은 내가 나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라.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이 지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 그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속삭이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자.

내가 다 안단다!

 

네 뿌리를 옮기라.

회개하라는 것은 당장에 중단하라는 뜻이다.

'이제는 세상과 타협하지 마라.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마라.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마라. 그리고 회개하라.'

뿌리의 변화

나를 나 되게 하고 내가 인정받아서 내 인생의 존재 이유를 찾고, 내가 끊임없이 물을 주어 키웠던 그 뿌리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뿌리를 바꾸는 것은 그 사람들의 뿌리에서 하나님의 뿌리로 옮기는 것이다.

나의 유일한 관심의 대상을 하나님의 목소리에 두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해서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 썼습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주님 앞에서 살면서 누가 뭐라고 해도 꿋꿋하게 그 길을 달려가겠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올곧게 한 길을 걷겠습니다.'

행위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어 있다.

회개하면 행위의 변화가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

 

내 뿌리가 온전한 곳에 있는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사람에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좋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시 주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를 의식하며 살겠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양날이 선 칼로 우리와 맞서 싸우시겠다고 한다.

 

사역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모습과 같다. 내가 주님과 함께 거하니까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스스로 열매를 맺겠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시냇가에 심겨 있으니까 계절이 바뀌면 저절로 열매가 맺힌다. 예수님의 향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예수님의 향기를 바란다고 풍겨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예수님이라는 시냇가 옆에 심겨 있으니까 그분의 향기가 나는 것이다.

사역의 시작과 끝은 없다.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는 것이 영향력으로 발휘되는 것'

사역의 끝이 없다는 것은 긴장 상태를 풀지 않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 전진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순교는 오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나라에서는 과거의 업적이 중요하지 않다. 이제부터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나와 당신이 주님 편에서 선택하며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높이시는 이름을 가진자

우리가 회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주님만이 내 삶의 왕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달려가기로 선택하면 그때부터 광야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상급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만나'를 주신다.

하나님께로 뿌리를 옮겨라.

'새 인생을 너에게 선물해주겠다.'

'너는 내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속삭이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두 사람밖에 모른다.

'넌 내 거야. 그리고 그 이름은 아무도 몰라. 너하고 나밖에 몰라.'

 

'내가 네 수고를 안다. 네가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네가 충성된 것도 다 안다. 답답했던 마음과 네 눈물을 알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말 힘들었겠지만 잘 견뎌줬어'

주님과 맞서 싸우지말고 주님과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chapter5 죄를 회개하면 돌이킨다

세상과 한 몸이 되지 말라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정말 잘 하고 있다. 너희가 세상과 다른 본질을 가지고 거저 주는 사랑, 세상과 다른 본질을 교회 안에서 온전히 실행하고 있다.'

믿음은 세대를 초월한 주님을 향한 충성심이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사랑'이 세상과 다른 교회의 본질이고, '믿음'이 세대를 초월한 성도의 충성이라고 한다면, '섬김'은 서로를 채우는 데 필요한 사역이다.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하나님 앞에서 혹시 음란하고 더러운 곳이 있지는 않은가? 어두움을 용납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우리 안에서 익숙해져버려서 민감성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은가?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계2:21)

하나님께서 정말 많이 말씀하셨다.

'회개하라, 순결하라, 성별하라'

 

다스리는 자의 권세와 명예

'지키는 자' '테레오(tereo)'

교회의 순결을 끝까지 지켜낸다는 뜻과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지킨다는 의미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119:9)

'내가 세상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내가 주님의 계명을 따르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주님의 종이 되어 세상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라

'하나님, 저는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하지만 2천 년 전에 이미 그 대가가 지불되어 내가 오늘 담대히 주의 보좌 앞에 나왔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지음 받고 그분을 위해서 지음 받았다.(Everything was by him and for him)

우리를 지탱하고 계시는 분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지탱하고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근본이시요"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정신을 붙잡고 계신 분, 내 삶을 붙잡고 계신 분,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인 내 가정을 붙잡고 계씬 분이라는 의미이다.

그분은 나의 아멘이시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공의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하시는 우리의 증인이시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계신, 우리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다. 나의 자격이 되시는 분, 오늘 나를 나 되게 하시는 분, 오늘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그분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편지하신다.

'특별히 네가 잘한 것은 없다. 그런데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니?'

 

영적 빈곤함을 책망하신다.

영적 시각장애를 책망하신다.

안주해 버렸기에 영적 세상에 대한 시각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너희가 눈이 멀었다'라는 것은 '사람들의 필요를 너희가 못 보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배를 채우느라 바쁘고, 자기 배가 채워져서 배부르니까 남의 필요를 못 보는 것이다. 그래서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것이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버리리라"(계3:16)

'영적 헐벗음'을 책망하신다.

내가 배부르니 다른사람도 배부른 줄로 착각한다.

주님께서 영원한 것이 영존케 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흔드신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험으로 다가온다. 재정의 어려움, 이별, 깨진 관계 등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당황한다.

'하나님,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주님의 공로를 입으라.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신 다음에 회개케 하신다.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라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알면 문을 열라고 하신다.

회개할 수 있는 능력, 세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내 안에 심어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라!

 

chapter6  오직 주님께만 충성한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깨어 오직 주님께만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견고하게 하도록 하자.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라

'현재, 과거, 미래'

지금 그분이 나와 함께하시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너와 함께 있다'

오늘 이 순간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의 실상이요 위로 그 자체였다.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시는 주님

먼저 '홀로 남겨진 자리에 찾아오시는 주님'으로 다가온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계2:9)

환난과 궁핍을 만났을 때 가장 힘든 점은 고독하다는 것이다.

'좁은 문, 좁은 길'로 부르셨다는 뜻이다.

'네 외로움을 내가 안다. 네 고통과 환난과 궁핍과 답답함과 억울함과 두려움과 막막함을 내가 알고 있다'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기 전에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나 혼자만 고통을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시켜주는 것이 위로가 된다.

이 세상에서 잃으면 저 세상에서는 찾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버리면 하나님나라에서 얻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싸워야 될 싸움과 싸울 가치가 없는 싸움을 알려주신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주님 안에서의 가족이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동역자이다.

'내가 그들의 행위를 알고 있음을 너희는 기억하라'

"복수의 칼을 내가 내 손으로 드는 이유는 내 안에 잠재적으로 의심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주님께서 복수해주지 않을거야'라는 의심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복수의 칼을 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대신 복수해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과 해결하실 문제이니 제가 중간에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주님 아시지요? 복수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복수하실 만하면 혼내실 것이고, 그 사람을 바꾸어서 회개시키는 것이 선하신 뜻이면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함께하시는 주님

'장차 다가올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단3:18)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고난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를 원하신다. 단지 고난을 피해가게 하시는 게 아니라 그것을 돌파하는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목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문제를 주시든 해결해주시든,물질을 주시든, 거두어가시든, 사업의 문을 여시든 닫으시든, 병을 주시든 낫게 하시든 오직 한 가지 목적,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이다.

 

'두려워하지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게 되어 있단다.(롬8:28).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반드시 내 뜻을 이루리니 너는 나만 바라보고 나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마라.'

충성, 죽기까지 신실하다(stay faithful to death)라는 뜻이다. 즉 주님을 배반치 않겠다는 뜻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의 신실함을 끝까지 지켜내라.'

성경에서 말하는 충성은 신실함이다.

'처음보다 나중에 더 주님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하나님나라에 유익하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히 살아서 하나님을 많이 섬기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 날에 순교하게 해주시면 저는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핍박 가운데 드러나는 진짜 아름다움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쌈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2:10.,11)

주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영광과 승리의 상징이다.

죽임을 당한 것 같은데 부활하고, 멸망한 것 같은데 승리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핍박을 견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받으라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다.

그분은 '신실하신 분'이다.

언제나 동일하게 끝까지 요동치 않는 이

그분은 '다윗의 열쇠를 소유하신 분'이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22:22)

즉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펼쳐나가시는 그 나라의 경영을 가로막을 자가 없다는 뜻이다.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은 자의 상급

하나님은 조그만 것을 가지고 극대화시켜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귀하게 여기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없는 것부터 사용하시기 시작했다.

결국 주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은 어떤 위대한 사역이 아니다. '네가 정말로 내 말을 지키며 살아냈느냐, 살아내지 못했느냐'에 집중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순종해야 할 때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부르신 그 자리,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 누가 봐주지 않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사람이다.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눅14:29)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를 생각해보고 자신이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굳게 잡아 끝까지 달려내라'고 권면하신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기억하라'

비록 작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소중함을 깨달으라.

 

'주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라'

주님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서 우리가 최대한 살아 드리는 데 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끝까지 붙들라'

숨 막히는 현장 속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견뎌내는 것을 주님께서 더 기뻐하신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더 귀한 것을 선택하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굳게 잡아 끝까지 달려내고 면류관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으면 주님께서 허락하시겠다는 세 가지 축복이 있다.

1. 주님께서 높이신다고 한다.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아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3:9)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하나님의 방법은 나를 핍박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해주시기도 하지만 더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들 앞에서 직접 나를 높여 주시는 것이다.

2. 주님께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고 한다.

3. 주님께 완전한 인치심을 받는다.

'너는 내 나라에 속한 사람이야'

주님께 속한 소속감보다 더 큰 안정감을 주는 것은 없다.

 

죽지말고, 회개하여 사명을 이루라

역사의 주관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계3:1)

"For I have not found your deeds completed in the sight of My God"

"하나님께서 너에게 맡기신 사명이 덜 끝났으니 제발 죽지마"

우리가 약해지는 것은 다 이루어싸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 할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고 복음이 다 전파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깨어나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최후 승리는 없다. 나와 당신은 오늘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내가 자신을 용납할 수 없고, 용서하지 못해도 아직 주인께서 쓰시려고 하는 한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마21:3)

부르신 이가 주님이시기에 그만두는 것도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만둘 수가 없다.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을 지키며 죄를 회개하고 돌아와라'

약속과 축복의 말씀을 주신다.

 

은혜를 기억하고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면 주님께서는 흰 옷을 주신다고 한다.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들이 합당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죽기 전까지는 씨름할 수 있다. 그런데 죽어버리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겔37:3)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6)

낫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으면 숨을 쉬고 있어도 죽은 것이다.

'낫고자 하느냐? 살고자 하느냐? 네 삶이 오늘 이대로 끝나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현 상태로 만족하느냐?'

"살고자 합니다"라는 답이 나오면 살기 시작할 것이다.

 

환난의 시대를 넉넉히 돌파하는 법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보화로 삼아 이 환난의 시대를 돌파하라.

그분은 오늘도 핍박을 받고 세상이 뒤집어져도 어려운 환경 속에 뜻을 굽히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3 PART 이기는 자는 '본질에 충신한 자'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유명해지고, 위대해지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고, 보다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자아를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그분의 깃발을 들어올리고, 그분 안에서 내가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chapter7 팔복의 비밀을 누린다

이기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인생의 보화로 삼아 주님 때문에 순결하고, 주님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주님 때문에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본질을 돌이켜보라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떠한 본질로서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팔복의 재해석, 여덟가지 마카리오스

팔복은 이 시대에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할 수 있는 성도의 본질을 점검하는 여덟 가지 목록인 것이다.

 

부도난 인생을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 울라.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기뻐하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기뻐하라. 드디어 천국 문이 너희를 향해 열리기 시작했다.

심령이 가난하다.

하나님, 저는 영적으로 부도가 났습니다. 이 외로운 마음을 아무리 추스르려 해도 모든 자원이 바닥났습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살려고 해도 깨어 있기가 힘듭니다.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자꾸 넘어집니다. 저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엑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런 자는 기뻐하라. 너희에게 천국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라.'

 

2. 애통하는 자는 기뻐하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하나님, 저는 안 됩니다. 여기까지 했는데 이게 제 한계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크리스천은 내가 잘산 것도 회개하고, 못 산 것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증거와 간증이 없다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 계시구나'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그리고 주님의 약속에 대한 어떤 확신도 없다는 뜻이다. 확신이 없으니까 능력도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지키실 것을 확신하기에 죄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애통하는 자의 자리를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 예로 하나님께서 애통할 기회를 주실 때 우리는 전화기부터 든다. 내 방법으로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작정한 것은 바꾸지 않으신다.

 

주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채움을 받으라.

3. 온유한 자는 기뻐하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애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위로를 주신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온유한 것과 우유부단한 것을 착각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유부단한 태도다. 왜냐하면 좋은 것도 나쁘다고 말할 수 있고, 나쁜 것도 좋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경에서 불의라고 말씀하신다.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꼐 미움을 받느니라"(잠17:15)

하나님 제게 주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만약 제가 주님을 배반하는 날에는 제 소유를 다 거둬가주세요.

제게는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충성된 자는 기뻐하라. 너희가 충성을 맹세한 그분의 모든 소유가 너희의 유업이 될 것이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기뻐하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내가 충성을 맹세한 그분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오늘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 오늘 또 죄를 지었어요.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 다른 사람들이 다 저를 부정하는데 주님은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는 의인이야. 괜찮아. 또 일어나면 돼.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괜찮아. 일어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주님 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서 맛보는 천국의 삶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기뻐하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네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했다면 너도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리라. 네가 남을 긍휼히 여기는 순간을 기뻐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까 네 안에서 확증되었기 때문이다.

정죄할 수 있는 권리가 내게는 없다. 내가 나 된 것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경험했다면 남을 긍휼히 여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고 '나의 나 됨'을 누리라.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기뻐하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너의 동기를 지켜라. 네 삶의 모든 행위가 그 동기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하라.

 

'하나님, 제가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한 가지만을 원합니다. 다른 은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의 얼굴만을 보기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그래, 그러면 이제는 무엇을 위해 신앙 생활을 할래?'

내가 정말 원하는 것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진짜냐, 가짜냐? 양이냐, 염소냐? 알곡이냐, 쭉정이냐? 곡식이냐, 가라지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 아니면 나 때문에 가는 천국을 원하니?

네가 나를 사랑하니? 아니면 나 때문에 받을 복을 원하니?

마음이 청결한 자, 곧 한 가지만을 원하는 자는 기뻐하라.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독대한 사람의 열매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기뻐하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과 나의 모습이 공유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 하나님의 눈물과 나의 눈물,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방법과 나의 방법이 공유되기 시작한다.

구군가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깨진 공의는 회복되지 않는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은 감정적으로만 '그래, 괜찮아. 이제 됐다. 용서할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 예수님께서 공의를 회복하기 위해 그 값을 치르셨다는 뜻이다.

 

내 물질이 소모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물질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젊음과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생명이 밀알과 같이 떨어졌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 탄생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진리이다.

공의를 회복하는 방법은 결국 희생이다.

 

최고로 영광스런 삶을 위하여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기뻐하라.

심령이 가난한 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리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심령이 가난한 자리에서 주닝믈 만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자리까지 돌파하여서 결국은 최고로 영광스러울 때 떨어지는 삶.

영광에서 영광으로 마치는 삶.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이런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이제 그 사랑으로 인해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하소서.'

 

chapter8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린다

복음의 중심 내용은"주가 다스리신다" 즉 주의 통치하심이다.

세상을 돌파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러한 예수님의 승리를 우리가 공유해야 한다.

 

주님의 특권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천 년 전에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라 해도 이 시대를 살아갈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이미 중보기도를 해놓으셨다.

이미 주님께서 기도로 닦아놓은 기를 신뢰하며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 주님의 관점을 소유하며 주님의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길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약속하셨다.

 

예수의 이름이 갖는 무한한 특권

주님의 도우심에 대한 약속으로 '예수의 이름'을 주셨다.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ㅁ두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이제는 내 이름으로)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신다.

나의 믿음조차도 주님의 통치하심 아래에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쉠(shem)'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누군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본질'이라는 뜻이다. 본질이란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나와 같은 본질로, 같은 눈물로, 같은 마음으로서 바라보고 구하라. 그리하면 다 얻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와야 할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집중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자리이다. 그분의 심장이 뛰는 자리, 주님의 눈물을 공유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다만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마음을 더 드리며,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해서 실천해야 한다.

 

광야와 같은 시대에 붙들어야 할 성령

근본적인 성령님의 사역 3가지

1.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

2.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시며

3.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다.

 

메마른 땅에서도 에배하는 능력

성령은 찾는 답을 얻게 하신다.

서로에게 구했던 답을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발견하게 도와주신다.

성령은 순간순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행복하려고 하지마. 외로운 길이야. 충만해지려고 하지마. 성령님을 통해서 마시면 돼. 메마른 땅을 종일토록 걷는 느낌으로 네가 채워지지 않는 교회에 다닌다 할지라도 괜찮아. 교회가 너를 통해 조금 채워지면 그것으로 된 거야 . 네가 조금 목마르고 교회가 너를 통해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문을 한 마디라도 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니? 그리고 너는 나를 끊임없이 마셔라.

인내하며 부르신 그 자리를 예배의 처소로 만들어내는 기적을 이루길 바란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을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기억하자! 참된 능력은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충실히 살아드리는 예배자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며 새 힘을 주시는 성령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신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4)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것이 부엇인가"

나는 그 답이 바라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믿음은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여호와를 바라보고 그분의 영광을 목격하는 순간, 나는 거기에 이끌리어 주님을 추적하며 달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진짜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복음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하나를 위해서라면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든 말든, 가족에게 버림을 받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달려간다.

온전한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성령은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신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일치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16:15)

아버지 것이 예수님의 것이고, 예수님의 것이 성령님의 것이며,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성령님의 것이 우리 것이라는 뜻이다.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뜨싱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결코 우리에게 영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미 완벽한 영광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높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높이며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높였다.

삼위일체 안에서 완벽하고 영광스런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여 만족스런 상태였다.

그렇다면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인간은 하나님의 본성을 똑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기쁨의 교제권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정말 좋다. 이 기쁨의 교제권을 넓히자. 이 행복을 같이 나누자' 이런 마음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교제권으로 들어오게 하셨다.

'진짜 좋지?'

 

'아버지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성령님의 것이며, 성령님이 너희 안에 계시니 성령님의 것이 네 것이다. 우리 다 같이 공유하자. 나의 능력이 네 능력이고 내 눈물이 너의 눈물이며, 나의 기쁨의 너의 기쁨이 될 것이고 내 나라가 네 나라가 되며, 네 세계가 내 세계읻. 네 아픔이 내 아픔이고 내 아픔이 네 아픔이다.'

나와 당신은 성령님을 통해 늘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폭발되는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도우심에 대한 약속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아버지가 너희를 정말 사랑해서 사랑의 표현을 마음껏 하고 싶은데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법적으로 허용되도록 통로를 열어놨으니, 이제 아버지가 너희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셨기 때문에 이제는 법적으로 허용이 됐다.

 

사역의 열매가 없을지라도 지속하는 힘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길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약속하셨다. 주님의 도우심을 입은 우리가 승리를 누리는 능력은 '주님의 관점'에서 나온다.

우리는 주님의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님의 경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38:4)

 

네가 내 뜻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나를 모른다.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나라, 이 시대를 펼쳐가려고 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모습이 회복되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시대를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주 예수 앞에 조용히 나가 은밀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교제해야 한다.

 

제가 저말 나를 알았다면 나를 혼자 두고 떠나진 않을 거야. 네가 나를 안다고 하지만 모르고 있어. 그래서 이제 나를 홀로 두고 떠날 떄가 드디어 왔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한계와 무지함을 아시고 다시 한 번 오직 본질, '예수 생명'에 집중하여 우리의 중심을 잡을 때가 됐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행하심을 기대해야 한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손길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너희가 나를 아다고 생각하고,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를 모르고 믿지도 않아. 이제 너희가 나를 버리고 떠나갈 때가 드디어 왔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하시기에 감당할 수 있어. 너희도 나를 보고 언젠가 홀로 남겨지는 그날이 왔을 때, 담담하게 감당해라.

 

사역의 열매가 없어도 계속 사역을 할수 있는가.

현상적인 이유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네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아버지께서 너를 홀로 두시지 않고 함께하신다는 사실로 기뻐해라.

이 시대를 적극적인 인내심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함께한 사람들은 그런 환난을 견딜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완전한 평안으로 돌파하는 십자가의 길

주님께서는 '내사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길 수 있어'라고 격려하시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약속하셨는데, 그 마지막 요소가 '주님의 평안'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우리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세상과 어떠한 마찰도 없었다면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는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짜 신앙인으로 살아갈수록 환난이 커진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고 평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은 화평을 이루러 오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주님이 세상을 이겼다는 점이다.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환난은 내가 이미 당한 환난이야. 그러니 놀라지 마. 내가 당했던 환난, 십자가 앞에서도 나를 잠잠케 했던 그 평안을 너희가 소유하면 너희도 이 시대에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어.

주님께서 소유했던 평안이란 한 가지였다.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하는 평안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불의한 재판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고 계셨다는 의미이다.

 

믿음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달려가는 삶은 외롭다. 좁은 길 가운데서도 또 좁은 길이 있고, 십자가의 길 가운데서 더 아픈 십자가의 길이 존재한다. 그런데 정말 억울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유다의 사자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언젠가 심판하실 날을 바라보며 평안을 얻어야 한다.

예수님이 주는 평안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서 우리가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담대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었다.

 

모든 짐을 다시 한 번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를 늘 은밀히 살피시는 그분 앞에 나아가 다시 한 번 위로를 얻자.

다 내려놓아라. 너 스스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예수님 앞에 조용히 나가는 것이다.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이 시대에 다시 큰 은혜를 흡족하게 베풀어주실 것이다.

하나님, 제가 어떠한 열매로 인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홀로 남겨진 그 자리에서도 주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그 진리 하나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십자가의 길,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도록 축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chapter9 이 세대를 제자 삼는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것도 중요하지만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도 엄청난 일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11:1)

믿음이라는 것은 보지는 못하지만 영적 시각이 열려 목격하게되는 능력이다. 즉 영적 시각이 믿음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교인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 부르셨다.

제자된 우리, 증인된 우리, 나그네된 우리, 예수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우리

 

"나도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라고 말하면 그 말은 곧 "나는 죽어도 괜찮다"라는 뜻이었다. 내가 그토록 사모하던 메시아가 바로 이분임을 발견하였기에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뜻이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증인이 된다는 뜻이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사랑에 못 이겨서 평생을 그분을 향해서 달려가는 삶이 크리스천의 삶이요, 증인의 삶이다. 당신은 오늘 증인의 삶을 삵소 있는가?

하나님, 저말 원을 받고 싶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십자가의 사건을 목격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을 보이소서. 주여, 얼굴을 보이소서.

영광을 목격한 만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목격한 만큼 세상을 초월할 수 있다.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만큼 세상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 주의 얼굴을 보이소서.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하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독대하게 하소서.

 

정말로 주님의 영광을 목격하고 증인으로 살아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으로 나에게 다가오시게끔 하라!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

하나님나라에서 요구되는 믿음은 열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종에서 나온다.

믿음은 열정의 열매가 아니라 순종의 열매다.

큰 믿음을 하루아침에 소유할 수는 없다. 한 번의 순종이 다음 믿음을 열어주고, 또 한 번의 순종이 그다음 믿음을 열어줘서 완성되는 것이다.

 

사랑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며... 사랑하기로 적정하는 '선택의 열매'라는 사실.

한 번 순종할 때마다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커지도록 도와준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다스리는 삶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28:18,19)

영광을 목격한 자로서 땅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권세가 필요하다.

권세(authorityj, power)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음 주신 것이 권세이다.

다스리라 하시니라.

권세는 복이며, 그 복의 내용은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는 다스리고 통치하는 능력, 정복하는 능력이다.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넉넉히 정복하느니라.

세상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며, 문제가 눈앞에 있어도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이것은 고통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격한 증인이면 그 권세를 소유하게 된다.

권세에는 목적이 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향하여

비전은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비전을 주신 다음에 권세를 주신다. 권세는 세상을 초월한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명도 주신다는 점이다. 땅 끝까지 가지고 갈 내용을 주시는 데, 그것이'사명'이다.

가라(제자를)삼아라, (세례를)주어라, 가르쳐라.

go, therefore make disciples, baptizing them, and teach them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게 믿음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분을 믿는 것이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보았기에 믿는 것이 믿음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제자의 기준은 말씀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이다. 순종했느냐 순종하지 않았느냐, 분부한 모든 것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14:21)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주님께서 연단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하나, 내 안의 모든 이물질을 제거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남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인정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내가 완성품이 되기까지 기다리지말자. 어떤 사역이나 내 기준이 아니라 오늘도 말씀 앞에 순종하며 주님 나라의 제자가 되는 것이 기준임을 기억하는 삶을 살자.

광야는 살기 힘든 곳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연약함과 불신이 노출되는 곳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과 짜증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곳이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실 때, 먼저 내 감정을 내려놓게 하신다. 내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해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다.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고 더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게 하신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그분의 깃발을 들어올리고, 그분 안에서 내가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에필로그 ㅣ 승리하신 그분을 따라

내가 이미 싸웠다. 나를 따라와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먼저 가겠다.

전쟁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내 안의 분노와 내일에 대한 불안감, 현실의 막막함 등 내 안의 적을 정복하게 하시는 분이 있다.

너는 전쟁에 임할 때 나를 위해 싸워라. 나는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 반드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겠다.

우리의 싸움은 처음부터 승부가 난 싸움이다.

우리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 편에 서는 법을 습관화해야 한다.

 

끊임없이 '내가 하나님 편인가? 나의 동기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싸우면 하나님이 승리를 책임지신다.

우리의 승리와 패배는 하나님 손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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