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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기주의자_Wayne W.Dyer

행복한이기주의자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웨인 다이어 (21세기북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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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우주의 모든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직 한 사람, 바로 당신에게로 향해 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행복을 얻기 위해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내렸거나 아직 내리지 않은 선택의 관점에서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라.
한층 행복해지고 훨씬 효율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내 앞에 열린 선택들을 더 잘 깨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당한 양의 동기 부여와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감히'말하고 싶다.
현재의 순간들을 통제하는 일
내가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뿐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 다시말해 오류지대들은 사실상 하나같이 현재가 아닌 다른 순간에 살고자 하는 노력이다.

머나멀리 여행을 떠나고파라
내 영혼 안에 있는 기쁨에 닿고 싶기에
내가 알고 있는 한계를 바꾸고
내 정신과 영혼이 자라는 것을 느끼고 싶기에

생활하고 존재하고 '살아가고'파라
내 안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고 싶기에_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_도리스 워셰이(Doris Warshay)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위대함의 본질은 다른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상황 속에서도 차곡차곡 자기실현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뒤를 돌아보라. 늘 나의 뒤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이렇듯 모른 척해도 되는 걸까?"
"그토록 끌어안고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물질이 소중한가?"
열심히 살자. 나는 나다. 인생을 즐기자. 사랑하자.
"만일 내 일생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면......"
지켜야 할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죽어 있을 작정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기간이 너무도 짧은 것이 분명한데 적어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요컨대 나의 삶이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자.

[행복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면 먼저 매우 그릇된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가장 잘못된 통념은 '똑똑함'에 관한 것이다.
똑똑함의 참된 척도는 하루하루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제대로 즐겁게 사느냐다.
따라서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똑똑한 사람이다.
행복을 선택하면 '신경질'에 대한 궁극적인 방패막이를 얻게 된다.
신경은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기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법을 알고 있다. 삶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닌, 자신이 행복하고 소중해질 수 있는 능력을 똑똑함의 잣대로 삼는다.
힘겨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기분을 어떻게 다스리기로 작정했느냐에 따라 가늠할 수 있다.
스스로를 자신의 중심에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은 선택이다]
감정은 선택 의지가 들어가 있는 반응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면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택하지 않게 된다.
"나는 내 생가가을 통제할 수 있다. 내 감정은 내 생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내가 내 생각을 통제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하는가?"
생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감정은 생각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다.
생각을 통제할 수 있고 그 생각에서 감정이 생긴다면 감정도 통제할 수 있다.
내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주위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때문이다. 거침없고 다부진 사람이 되려면 그 생각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가가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불행으로 내몰았다.
"내가 왜 구태여 우울을 택해야 하는가? 우울해진다고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눈꼽만큼이라도 보탬이 되는가?"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틀림없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느끼며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에 대해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내가 그러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말이다.

[행복을 선택하라]
불행해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행복하겠다는, 내 마음 속에 불행을 만들어내는 생각 따위는 모두 없애버리고야 말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내 인생을 꼬이게 만드는 일들에 안주해 있는 것보다 행복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 아닐까?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면 흥미를 돋우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생각을 활발하게 바꾼다는 것은 골머리 아프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평가하고 그것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참신하게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특히 삶에서 극히 사소한 비중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
뇌는 어딜 가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막강한 도구로, 마음만 먹으면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환상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운명을 개선시키고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

[나는 무기력한 사람은 아닐까]
무기력은 어떠한 행동에도 나서고 싶지 않은 소극성에서부터 우유부단함과 망설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당신은 화가 나면 말이나 감정 또는 행동을 아예 접어버리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당신은 쑥스러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그러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어야 할 경험까지 놓치게 되는 셈이다.
무기력이란 '그 정도가 심각하든 경미하든 내가 원하는 정도로 기능할 수 없는 상태'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아무리 증상이 경미한 무기력이라 해도 그 무기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다른 순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미래는 다가오면 맞아야 할 또 다른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우리는 끝도 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당한다.
현재의 매 순간을 힘껏 들이마시고 이미 끝난 과거나 오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끄자.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인 현재의 순간을 꽉 붙잡자. 바람, 희망, 후회는 현재를 기피하기 위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전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만이 전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있는 힘껏 살아라.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살아갈 인생이 있는 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가졌거늘 도대체 무엇을 더 '가지려 하는가?'...... 잃게 되어 있는 것은 잃는 법이다. 이 점을 명심하라. ...... 아직 운이 좋아 인생을 더 살아갈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이 기회다. ...... 살아라! _ Henry James<사절들(The Ambassadors)> 중

실행에 옮겨라!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길러라. 인생의 순간 순간을 붙잡아서 음미하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

[발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성장하고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기왕이면 부족한 점을 보충해야 할 필요보다는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에 자극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성장하고 발전하며 보다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성장 동기란 바꿔 말하면 더 큰 행복을 위해 나의 생명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휘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운명을결정한다는 말이다.
나는 내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환경을 만든다.-George Bernrd Shaw <워런 부인의 직업(Mrs. Warren's Profession)>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은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환경을 만든다.
나는 선택할 수 있고, 온전히 나의 것인 현재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다. 현재는 나의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기준이 되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가치가 될 뿐이다.
'열등의식'
그 병에 대해 지금껏 알려진 유일한 치료방법은 '자기사랑'이라는 약을 대량 복용하는 것 뿐이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고 먼저 생각해주는 법도 배웠다. 그래야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일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본래 자신을 아름답고 매우 귀중한 사람이라 여기도록 타고났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교훈은 자명하다. 어른은 중요하고 아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고 자신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이겠거니 하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의'라는 가면을 쓴 의식 강화 수단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 '매너'라는 말로 변장한 그런 규칙들이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우리 생각 속에 각인시키는 가운데 그 대가로 자신의 가치를 내놓기 까지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중차대한 일이 힘에 부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 선택한 일이라면 무엇이나,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건 안들건 허용할 줄 아는 능력과 의지'다.
어떻게 하면 기대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지 않고 상대방이 택한 것을 허락해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자기 사랑을 통해서다. 스스로 중요하고 소중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일단 자기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인식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게 만들면서 내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나는 독특하다. 또한 상대방도 독특하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순응하게 되면 그들 나름의 독특함을 잃게 된다. 내가 그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남다른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잘하게 되면 어느 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나 자신을 위해 사랑을 베출고 배려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넉넉해질 줄 알게 된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다.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면 내 사랑도 별 볼 일 없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일, 그리고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일은 사랑을 듬뿍 받는 자아와 함께 출발한다.
설령 그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나도 당신을 사랑해, 노아."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해도 그는 그 대답을 자신 고유의 가치와 무관하게 여길 것이다.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손상되지 않았던 그의 가치가 어찌 입 밖에 내어 말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겠는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혐오가 자기사랑보다 더 건전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긍정적인 감정을 개발해야 한다. 실수에서 배우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결심하되 그것을 자신의 가치와 연결짓지는 마라.
엄연한 기정 사실인 자신의 가치를 자신의 행동과, 또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행동과 절대 혼동하지 말라.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자신을 사랑하는 놀라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내 자아상은 내가 가꾼다]
우리의 자아상은 한두 개가 아니다. 또한 시시각각 변한다.
우리는 활동의 수만큼이나 많은 자아상을 갖고 있으며 항상 그 모든 행동을 통해 '내'가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인간이다.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이다.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기정 사실인 나의 가치는 내 행동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 나의 행동이 마땅찮게 느껴지는 때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가치와는 무관하다. 나는 언제까지고 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겠노라 작심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
내몸이 바로 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싫어한다는 것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내가 어디가 매력적인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못하게 하라. 자신의 신체를 좋아하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신체가 자신에게 소중하고 매력적이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교나 평가는 거들떠 보지도 말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결정한다.
자기 수용이란 자신의 모든 신체적 조건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자신 안에서 내밀한 기쁨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의미다.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똑똑해질 수 있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행복하고 알차게 살며 사랑하는 것이 훨씬 멋진 목표다.
우리는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똑똑해질 수 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원하는 자아상을 가꿀 수 있다는 논리는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자신의 모습 하나하나에 적용된다.

[자신을 낮추지 말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려고 하는 사람의 노력도 뿌리쳤다. 그 누구도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할 리 없다고 단정해버린 것이다.
당신은 분명 스스로를 비하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

[불평은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다]
자기사랑이란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만이 없다는 뜻이다. 알차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다.
쓸데없이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행복하다는 것은 자신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일들을 놓고 한탄하지 않는 것이다.
불평은 자기 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다.
다른 사람들에게 푸념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뭐야, 불평만 하다니. 제게 할 말이 그렇게 없나요?"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자신에게도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해보면 투덜거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인지 알게 될 것이다. 불평은 시간 낭비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마음 속으로 묵묵히 자신을 칭찬해준다든가 다른 사람이 알차게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등 자기사랑을 연습하는 편이 훨씬 보람된 일이다.
어느 가엾은 영혼에게 불평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행동이다.
자신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효과적으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게 한다. 자기 연민을 부추기고 사랑을 주고받고자 노력할 수도 없게 한다.
불평 없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자기사랑과 불평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서 좋지 않은 점을 발견할 때 푸념하기보다는 그것을 고치기 이해 필요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어느정도가 불평이었는가를 죽 메모해보라. 자신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 상황, 물가, 날씨 등의 순으로.
"우리가 오늘밤 하소연한 일들 모두에 진정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 누구였는가?"
그리고 앞으로 내 입에서 불평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지금의 허탈함을 기억하라.
자기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자기 인정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결과]
이런 생각들이 하나둘 모여 자신을 깍아내리고 그 한심한 상태를 지속시키는 심리 구조를 만들고 있다. 애써 일어서려느느 것보다 주저앉아있는 편이 훨씬 덜 위험할뿐더러 속 편하기 그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살아있다는 것의 유일한 증거는 성장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을 모른척 하는 것은 '죽은 삶'을 살겠다고 작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기사랑 훈련은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방법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자신의 말을 고치는 것이다. "내가 방금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운 때문이 아니었어. 이번엔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몰라."
이것은 자기사랑으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이다. 자신을 비하하는 그 순간을 인식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면서 내딛는 첫걸음이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결코 배신당할 염려 없는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생기 넘치는 행동을 할 일만 남았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식으로 행동한다.
- 사랑이나 호의를 갖고 접근해 오는 사람들의 시도에 새롭게 반응한다.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기뻐"
-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솔직하게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무슨 반응을 얻게 될까를 탐색하는 대신 그 가슴 떨림을 감당한 데 대해 스스로를 격려해 준다.
- 레스토랑에 가면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도 정말로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한다.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 나 자신에게 한턱낸다. 정말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것에 빠져든다. 나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어떤 단체에 가입하거나 즐길 만한 활동에 참가한다.
- 질투하지 않는다. 질투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다ㅏ. 그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의 문제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
-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내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대체로 자신이 만족을 얻어야 비로소 상대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다.
- 나는 성취도와 상관없는 나만의 가치가 있다는 것.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표면적 행동을 혼동하는 고집을 부리게 될 것이다.

"불평 없이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늘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사랑을 베풀고 받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고 소중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위한 자기만의 목표를 정하라. 그 소중한 사람은 물론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일은 필요조건이 아닌 그저 희망 사항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인정을 '원하고'
인정을 반드시 '필요로'
인정을 구하는 일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될 경우 자신의 상당 부분을 '외부인'에게 내맡기는 꼴이 된다.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꽤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모든'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참으로 문제다. 그런 필요조건을 갖고 있다면 살아가면서 몹시 마음 상하고 실망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인정을 필요조건으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인생을 엮어가다 보면 상당한 반대에 부닥칠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치러야 할 세금 같은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면 진실은 꼭꼭 숨게 마련이다. 반드시 동조를 얻어야만 한다면, 그래서 그런 신호를 내보낸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인정을 필요조건으로 삼는 덫에 빠지면 다른 사람의 생각에 휘둘리게 된다. 그 덫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런 심리상태를 자라게 하는 요인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눈치 권하는 사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보다 중요시하게 되면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우울해지고 자기 비하와 자책감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어도 의연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눈치보게 하는 부모님]
칭찬은 착한 행동에만 주어져서는 안 된다.
유아기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싶어한다.
자녀에게 인정은 언제든 주어져야 하는 것이지, 마땅한 행동을 한 보상으로 주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긍심과 다른 사람의 인정을 혼동하도록 부추겨서는 안 된다.

[학교는 붕어빵 공장]
인정을 탐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는 일이 성공이나 행복과 동급이라고 배운 것이다.

[사회는 눈치쟁이 양성소다]
특별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는 무너져내릴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당신은 날 정말 행복하게 해요."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때까지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당신 덕분에 난 새로 태어난 느낌이에요."

습관은 습관이다. 창밖으로 단숨에 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가라고 꼬드겨야 하는 것이다.- Mark Twain <멍청이 윌슨(Puddinhead Wilson's Calendar)>

[남의 눈치를 보는 태도를 조금씩 내던져라]
우리는 결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사실 50% 정도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도 꽤나 성공한 것이다.
누군가 나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상처받거나 동조를 얻기위해 즉각 의견을 바꾸지 않고 그저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50%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겠거니 생각하면 된다. 나의 느낌, 생각, 말, 행동 하나하나에 늘 어느 정도의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두면 실망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해도 다른 사람의 반대를 피할 수는 없다.
자신을 포기하는 행동

[자꾸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이유]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 있다.

[인정은 애타게 구할수록 멀어진다]
어쩌면 당신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사람은 솔직하고 뒤끝 없고 단도직입적이며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개의치 않으며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은 동조를 구할 시간적 여유조차 거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필시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느느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요령이나 수완보다는 정직을 더 중요시할지도 모른다.

"왜 그토록 네 꼬리를 따라다니는거냐?"
새끼 고양이가 말했다.
"고양이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행복이고, 그 행복은 제 꼬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꼬리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내가 꼬리를 붙잡으면 행복을 얻게 될 거예요."
어미 고양이가 말했다.
"아들아, 나도 그런 우주 섭리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단다. 나도 행복이 내 꼬리 안에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꼬리를 따라다닐 때마다 꼬리는 계속 내게서 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바쁘게 일을 하자 꼬리는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오더구나."
정말 얄궂게도 인정을 받고 싶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정을 원하지 않고 그 뒤를 좇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인정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나 자신과 대화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에 자문을 구하면 더 많은 칭찬이 제 발로 찾아올 것이다.
물론 하는 일 모두에 모든 사람의 찬성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면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결코 주눅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기 위한 전략]
반대 의견에 부닥쳤을 경우 자신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너' 화났구나. '너'는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니?"
누군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사실을 알려준다면, 비록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고마워할 것.
그 사실을 지적해준 것에 그냥 고마워하라.
다른 사람의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한 뒤 흥분하지 않도록 노력해볼 것.
사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 말, 행동과 내 가치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을 것. 비난에 부딪혔을 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이건 그 사람의 문제야. 내 저렇게 나올 줄 알았어. 하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인 걸 어찌 하겠는가.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을 할 때마다 소리를 내어 그것을 바로잡을 것.
내가 방금 말한 것이 정말이지 나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지 말 것.
말을 아끼도록.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말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
자신의 행동을 명백히 밝히면서 말허리를 잘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해 본다.
자신이 하는 말 가운데 물어보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순서대로 나열해 볼 것.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항상 말꼬리를 올리고 있다면 별것도 아닌 일에 늘 인정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노력이든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비난에 부딪혀도 실망하지 않게 되면 즐거운 현재의 자유를 평생 얻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과거의 삶에서 얻은 자신에 대한 평판들을 늘어놓으면서 과거 속에서만 어슬렁대는 것은 유령이나 하는 짓이다. 오늘의 나이지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는가?
남들의 시시껄렁한 평판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는가?
"그렇게 단정적인 말로 나를 표현하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Kierkegaard
그런 단저적인 꼬리표에 어울리게 행동하면서 자신의 고유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라는 것은 '한움큼의 재'다-Carl Sandburg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런 꼬리표는 우리가 과거에 몸에 익힌 어떤 습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떻다' 꼬리표의 뿌리]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요. 나는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실은 그다지 관심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소극적인 태도를 정당화 한다.

[전형적인 10가지 꼬리표 유형]
장담컨대 당신은 앞으로 변화에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성격은 자신이 만들기 나름인데도 스스로 마땅찮게 여기는 성격 특질들을 전부 유전 탓으로 돌린다.

[꼬리표 붙이기의 악순환]
당신이 '나는 어떻다' 꼬리표를 불러내면서 과거에 매달린 덕분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회피'라는 한 마디로 깔끔하게 요약할 수 있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의 꼬리표는 '나는 내성적이다'에서 '지금까지는 내성적이었다'로 바뀔 것이다.

[꼬리표를 내던지기 위한 전략]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위험이 수반된다.
되도록 현재시제의 꼬리표를 사용하지 말것. "지금까지는 그랬지." 도는 "예전에는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지......." 등 과거 시제를 사용하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제 그런 말투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할 것. 어떤 꼬리표를 가장 우선적으로 없애야 하는가를 결정하고, 내가 혹여 그런 말을 끄집어낼 기색이라도 보이면 주의시켜달라고 부탁하라.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겠다는 목표를 정할 것.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에게 자신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말할 것.
자신을 망치는 꼬리표를 붙인 행동에 대해 일기를 쓸 것.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또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를 기록하라. 그리고 그일기의 길이를 줄이도록 노력하라.
꼬리표를 하루에 한 가지씩 없애도록 노력할 것.
끈덕지게 붙이고 다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 꼬리표가 있거든 하루를 할애해 반대 의견을 참아내보라.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찾아내어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어느 날 오후를 비워둘 것.

[인생은 갈고 닦기 나름이다]
'타고난 본성'같은 것은 없다. 그 말 자체는 사람들을 멋대로 분류하고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 자신을 어떤 말로 표현하는가?"
하도 써서 닳고 닳은 넌더리나는 꼬리표들 때문에 인생을 알차게 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멀린은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슬픔의 가장 좋은 처방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결코 어긋날 일이 없는 것은 오로지 배움뿐이다. 사람은 노쇠해져 쭈글쭈글해진 채 사지가 후들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밤에 홀로 깨어 흐트러진 맥박소리를 들으며 뒤척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사악한 미치광이들의 손에 피폐해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의 명예가 버러지 같은 얄팍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오직하나, 배움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배워라. 오로지 배움만이 정신력을 지치지 않게 하고 소외시키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두렵게 하거나 불신하거나 꿈에서도 후회하지 않게 한다. 배움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자,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배움에 이 세상 유일의 순수삼이 있다.
일생에 걸쳐 천문학을, 삼생에 걸쳐 자연사를, 육생에 걸쳐 문학을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백만생을 바쳐 생물학, 의학, 이론 비평학, 지리, 역사, 경제학을 배운 뒤 적합한 목재로 마차의 바퀴를 제작할 수도 있고 50년을 더 쏟아 펜싱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뒤 다시 한 번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가 농사 짓는 법을 배울 시기를 맞이해도 좋지 않겠는가."-Merlin

"나는 꼬리표를 떼는 사람이다."

[자책도 걱정도 없다]
노상 자책감과 걱정을 끌어안고 있기만 해서 과거나 미래 상황이 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다른 현실 체계를 가진 별천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일생을 통해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이 두 가지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자책감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섣부른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걱정과 자책감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자책감은 '과거'에 행한 어떤 행위의 결과 옴짝달싹 못한 채 현재의 순간들을 잡아먹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일 때문에 현재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 일은 자신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걱정은 미래, 자책감은 과거에 대한 반응이지만, 둘 다 현재의 자신을 불안하게 하거나 꼼짝 못하게 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

사람이 이성을 잃고 날뛰게 되는 것은 오늘의 경험 때문이 아니다.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한 회한과 내일 들춰질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과거 행위와 관련된 감정에 사로잡혀 현재의 순간들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반면 걱정의 경우, 미래의 일에 집착하면서 소중한 현재를 잡아먹는다. 뒤를 보고 있든 앞을 보고 있든 그 결과는 똑 같다. 현재의 순간들을 내동댕이 치는 것.
일주일 가운데 내가 절대 걱정하지 않는 이틀이 있다. 그 걱정 없는 이틀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결코 넘볼 자리가 없다. 하루는 어제, 그리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자책감이란......]
우리는 자책감 기계다.
이는 따뜻한 사람이라고는 꼬리표를 얻기 위한 노이로제 반응이다.
자책감은 단연코 가장 많은 감정 에너지를 소모한다.
자책감이란 문자 그대로 '이미'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현재 옴짝달싹 못하는 감정이며, 아무리 자책해봤자 과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자책감은 과거의 일 때문에 현재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실수에서 배우는 것은 건전한 일이며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책감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에 일어난 일 때문에 상처받고 안절부절 못하고 우울해하면서 현재의 에너지를 무익하게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책감의 원천]
다 끝난 일이다!
과거는 엄연한 과거로, 결코 손쓸 재간이 없다.
만약 어떤 일을 한 뒤 그 일이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면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할 수 있는 일이다.
자책감은 도움이 안 된다.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행동을 앞으로도 계속 반복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자책감을 키우는 사회]
자책감에 사로잡혀 자기 책망만 하고 있는 것은 시간 낭비다.

[자책감을 없애기 위한 전략]
내가 과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과거는 하늘이 두 쪽나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이미 끝난 일이다! 아무리 자책감을 느껴봤자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현재 회피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문해볼 것. 그렇게 구체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자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땅찮게 여길 수도 있는 자신의 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
우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자책감 일기'를 쓸 것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나쁜' 행동을 죽 열거해 볼 것.
내 행동의 실제적 결과를 평가할 것. 내 인생에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어정쩡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라. 나의 어떤 행동이 나 자신에게 기쁨이 되고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자책감을 자극해 나를 조종하려 드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아무리 실망을 나타내도 나는 그 실망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
다른 사람들이 자책감을 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하면 서서히 태도를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
자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는 어떤 일을 해볼 것.
늘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일주일 정도 혼자 지내는 것도 좋다.

[걱정이란......]
걱정할 것 없다! 아무것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걱정을 해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걱정은 걱정을 배려와 동일시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랑이란 조건 없이, 강요 없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관계다.
대부분의 걱정은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는 일에 관한 것이다.

구구절절 정말 대단하다! 케케묵은 걱정거리에서 새로운 걱저거리까지. 우주적인 걱정거리에서 사소한 걱정거리까지.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은 얼마나 독창적인지, 보행자에서부터 태초에 이르기까지 온갖 걱정을 망라하며 온 세상의 걱정을 끝도 없이 끌어안고 살아야 직성이 풀린다. 태양이 빛을 잃는다면 기상청이 한밤중에도 일을 할까? 저온 냉동인간이 행여 되살아난다면 다시 주민등록 번호를 발급받고 투표에 참여해야 할까?-Ralph Schoenstein <뉴요커-녹슨 알맹이를 찾아서>

[걱정은 더 큰 걱정을 부른다]걱정과 자책감은 둘 다 자신을 껍데기만 남게 하는 행동이며, 다만 시간적 기준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걱정을 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
걱정은 충실한 삶을 방해한다.

[걱정을 없애기 위한 전략]
현재는 미래에 대해 집착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충실하게 살아야 할 때라는 점을 명심할 것
"걱정으로 허송세월하면서 내가 회피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기피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 됐건 그 일을 공략하기 시작하라. 걱정의 가장 좋은 해독제는 실행이다.
걱정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
자신의 '걱정 시간'을 점점 줄여나갈 것.
걱정은 미래를 변사히킬 힘이 전혀 없다.
스스로에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무엇이고, 그런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정도인가?"라고 질문을 던져볼 것.
평상시에 품고 있던 걱정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취해볼 것.
"나는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이었기 때문에 살이 있는 동안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썼다"
걱정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우리 인생에서 그런 노이로제 행동을 몰아내고자하는 스스로의 의지다.

[현재를 살아라]
현재가 바로 자책감이나 걱정에 사로잡힌 행위를 이해하는 열쇠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과거나 미래에 매몰되어 현재의 순간들을 허깨비처럼 보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숨쉬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불안한 자만이 안정을 갈구한다.
가장 아름다운 경험은 신비다. 신비야말로 모든 예술과 과학의 진정한 원천이다.-<내가 신봉하는 것(What I believe)>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한순간 한순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신비로운 것에 대한 기대에 가슴 설렐 때이지 않을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다는 생각과 애매모호한 행동은 이제 내다버려라.

[새로운 경험에 가슴을 열어라]
무엇이건 못 해낼 게 없다. 자기 자신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다면 말이다. 일단 확실하지 않은 영역에 용기 있게 발을 내디뎌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우리는 인간에게 허용된 경험을 모조리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유일한 차이라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밝지 못한 곳을 기꺼이 가로질러 갔다는 것이다.
"인간과 관련된 것치고 내게 이질적인 것은 없다"-Albert Schweitzer
대체로 그들의 위대함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그 대담성과 탐색의 질에서 빛을 발했다.
새로운 경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변화를 일구려고 노력하기보다 친숙한 것 위에 뭉개고 앉아 있는 편이 낫다는 그 안일한 생각을 집어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강인한 사람이다. 새로운 것에 접하는 일 정도로 스러져버리거나 힘들어할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판에 박힌 일상과 단조로움에서 다소나마 벗어나면 심리적 좌절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한번 삶에 흥미를 잃게 되면 언제 와르르 무너져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 불확실성이라는 양념을 약간만 얹어주면 근본을 알 수 없는 그런 심리적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할 수 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에나 이유를 붙이는 사고방식은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가로막는다.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이제 다시는 어떤 식으로도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 들겠는가.
'원한다면' 무엇이건 할 수 있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오늘이 어제의 재탕은 아닌가]
자신의 즉흥성을 면밀히 살펴보라.
즉흥성이란, 재미있을 것 같아 어떤 일을 순간적 기분에 휩쓸려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무책임하다거나 무모하다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지의 것을 발견하면서 너무도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예스맨은 즉흥적인 사람이 못 된다. 그들은 온몸으로 미지의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가?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반드시 확실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 없는 길로 자발적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사람인가?
경직된 사람들을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
당신은 1만 일이든 그 이상이든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진정으로 살아왔는가? 혹시 똑같은 하루를 1만 번, 또는 그 이상 재탕해 살아온 것은 아닌가?

[선입견을 버려라]
사실 선입견은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미지의 것을 탐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떄문이다. 즉흥적이 된다는 것은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생각을 시도하도록 스스로를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친숙하지 못한 영역에서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계획을 세워라'의 덫]
'계획된 즉흥성' 같은 것은 없다.
계획의 노예가 되지 말라!
그는 어쩌면 출세의 기회가 됐을지도 모르는 재미있고 새로운 일,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라는 기회를 저버리고 현상유지를 택했다.

[편안한 마음이 진정한 재산이다]
안전이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는 것이며 자극, 위험, 도전이 없다는 것이다. 안전은 성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성장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나와 내 안의 내적인 힘에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물질적인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무방한 인생의 부속품일 따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외적인 안전의 덫에 빠지지 말라.

언젠가는 떠나련다
자유로워지련다
무미건조한 것들을 떠나
안전한 밋밋함을 떠나
연락처도 남기지 않으련다
황량한 광야를 가로질러
그곳에 세상을 떨구기 위해
아무런 근심 없이 떠돌련다
한가한 지도책처럼
_James Kavanaugh<내 친구가 되어주겠니(언젠가는_Some Day)>

['최선을 다하라'의 덫]
실패라는 것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는 단지 특정 행위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됐어야 했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방식으로 행해져야 할 일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면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스스로의 기준에 비추어 실패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행동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도 완벽주의자?]
대체 왜 무슨 일이든 안간힘을 쓰고 잘해야 하는가?
"완벽이 아니면 모두 소용없다."라는 격언을 한 단어로 줄이면 '무기력'이다.
"최선을 다하라."라는 완벽주의적인 말은 우리를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최선을 다하라."를 그냥 "하라."로 바꿔보자.
완벽주의는 다시 말해 발이 묶인 상태다.
신은 완별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기준을 자신이나 자신의 행동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
자녀가 가장 즐겨 할 만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해서는 "힘껏 노력해봐"라고 격려하라. 그러나 그 외의 활동들에 대해서는 성공보다는 실행이 훨씬 중요하다ㅏ.
잘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피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잘해야 한다고, 남들보다 잘하라고 윽박질러서는 절대로 안된다. 대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자긍심과 자부심,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실패가 때로는 교훈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실패에서 자극을 받아 노력과 탐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만큼 실패하는 것도 없다."라는 말이 있었다.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실패다. 성공은 우리의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다지게 해줄 뿐이다.

[신비로운 것과 미지의 것에 맞붙기 위한 전략]
익숙한 것에 머물고픈 마음이 들더라도 새로운 것을 선택하라.
속내를 훤히 알 수 있는 늘 몰려다니는 패거리들 말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어울려라.
하는 일 모두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접을 것.
원한다면 마음먹은대로 행동할 수 있는 법이다.
약간 모험을 해 일상의 틀에서 탈출해볼 것. 예약도 하지 말고 지도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무슨일이 닥치더라도 믿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냥 색다르니까. 또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공상을 즐길 것. 거리낄 것 하나 없이 2주 정도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돈이 있다고 상상하라. 현실 궤도를 살짝 벗어난 공상 속의 행동이 사실은 현실 속에서도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잘 못 해."라고 말하면서 항상 회피해온 어떤 일을 시도해 볼 것.
성장의 반의어는 단조로움과 죽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날마다 즉흥적이며 생기 있게 새로운 방식으로 살겠다고 결심할 것인가, 아니면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고 현상유지만 고집할 것인가. 마음은 죽어 있는 상태로 말이다.
내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것. 새로운 일을 해볼 작정이라고 다부지게 말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보라.
"최선을 다하라"대신 "나에게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열심히 해보라.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하라"를 나와 자녀를 위한 신조어로 삼는다.
기억하라. 인간과 관련된 것치고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특유의 안전한 기피 행위로 빠져들려고 할 때 기억해내라.
미지의 것을 기피하려고 할 때 '내가 지금 또 이러는구나'하고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야"라고 말하라.
어떤 일에 고의적으로 실패해 볼 것. .. 아니면 '즐거운' 활동을 즐겼을 뿐인 꽤 괜찮은 사람일까?
기피해왔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것.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면 그들을 솔직하게 대할 수 없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구태의연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보자.
두 갈래로 나뉜 길을 떠올려보라. 한쪽 길에는 안전이 있고 다른 한쪽 길에는 개척되지 않은 멋진 미지의 세계가 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_Robert Frost<가지 않는 길(The Road Not Taken)>

선택은 나의 몫이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오류지대는 언제든 새롭고 가슴 설레는 활동에 자리를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필요는 없다. 일단 길에 들어섰다면.

[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나 법, 전통은 없다.
이 세상은 눈길 닿는 곳마다 '의무'천지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이런저런 의무를 자신의 행동에 적용시킨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늘 이치에 들어맞고 모든 경우에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법이나 규칙 따위는 없다. 그보다는 융통성이 훨씬 높이 살만한 덕목이다.
법은 없어서는 안 되며 질서는 문명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관습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항상 그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정책을 실행하려고 노력했을 따름이다."-Abraham Lincoln
의무가 득이 되지 않는 경우는 건전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방해할 때이다.

[내부 지향적인 사람 vs 외부 지향적인 사람]
자기 마음의 심지를 내부에 두는 사람은 감정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어깨 위에 당당히 올려놓는다.
나를 외부의 힘에 내맡기는 사람은 결코 자기실현을 구할 수 없다. 제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이란, 인생의 무제란 문제는 모두 제거하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마음의 심지를 자신의 외부에서 내부로 돌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분이 좋건 안 좋건, 그 기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사람이다.

[외부 지향적인 사람은 비난이나 영웅 숭배에 빠진다]
비난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을 때 요긴하게 꺼내 쓸 수 있는 꽤 괜찮은 방법이다.
모든 비난은 시간 낭비다. 다른 사람의 흠을 잡고 비난해도 자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불행이나 좌절을 눈가림하기 위해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서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비난이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다. 가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효과가 자신에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책감이 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자신이 불행한 원인을 바꿀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면 비난 아니면 영웅 숭배라는 양극단의 행동에 빠지게 된다. 영웅 숭배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다.
당신의 영웅도 모두 보통 사람이다. 그들도 모두 인간이다. 날마다 하는 일도 당신과 똑 같다.
누군가 영웅시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노력이다.
영웅시한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능숙할 따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흑백논리의 덫]
그러나 어떤 경우든 보장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무언가 다른 결과, 또는 더한층 효과적이거나 합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봄직하다.
그러나 사실 옳은 쪽도 그른 쪽도 없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며 상황을 바라보는 각도도 다르다.

[올바른 선택이란 없다]
우유부단은 옳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다.
옳은 선택이란 없다. 다른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그저 다를 뿐이다. 마음에 들어 산 옷을 입은 모습은 다른 옷을 입었을 때와 그저 다를 뿐이다.
정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을 망가뜨리기까지 하는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집어치우면 결정을 내리는 일이 간단해진다. 지금 어떤 결과를 더 선호하는지를 택하는 단순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후회는 시간 낭비다. 과거에서 계속 살게 되는 것이니까.
어떤 경우에도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에 빠져들지는 말라.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그 둘은 서로 다를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옳다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법은 옳고 그름을 가르지 않는다. 합법적인지의 여부를 가릴 뿐이다.

우리가 억압하려고 애쓰는 의견이 잘못된 의견이라고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설령 확신한다 해도 그 의견을 억누르려는 것 역시 잘못된 행동이다.-John Stuart Mill<자유론(On Liberty)>

자신이 얼마나 효과 있게 살아가느냐는 옳은 선택을 내리는 능력으로 가늠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가기로 했든,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느냐가 현재 자신이 얼마나 짜임새 있게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훨씬 좋은 척도다. 올바른 선택은 마음 한구석에서는 절대 따르고 싶지 않은 의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무분멸한 의무를 버리고 좀 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한다. 옳고 그름이라는 잘못된 범주가 없어지면 결정을 내리는 일이 예전보다 한층 수월해진다.

[의무감에 끌려다니는가]
'머스터베이션(musterbation.반드시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마스터베이션(masterbation)에 비유한 말)'이다.
하고 싶은 행동은 따로 있지만, 의무를 느끼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면 그때마다 '머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의무는 언제나 압박감을 자아낸다. 의무를 행동으로 실행하려 들수록 그 압박감은 더욱 커진다. ...... 더군다나 의무는 늘 외부 지향적인 속성이 있어서 여러 측면에서 인간관계를 교란시키는 데 기여한다.- Karen Horney<노이로제와 인간의 성장(Neurosis and Human Growth)>

삶의 대부분이 의무에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자.
어쩌면 그런 의무들은 당신 차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의무들이 실은 다른 사람의 것이며, 당신은 단지 빌려왔을 뿐이라면 당신은 '머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꼴이다.
덜렁대거나 이해력이 부족하면 좀 어떤가. 원한다면 채신머리 없어도 괜찮다. 아무도 나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도 나를 벌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티켓은 반드시 지켜야 할까]
올바르다고 정해져 있는 방식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내 결정이 나에게 온당하다. 그 결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들을 어떻게 소개하든 그건 내 마음대로다. 팁을 어떻게 주든, 무얼 입든, 어떤 식으로 말하든, 어디에 앉든, 어떻게 먹든 철저하게 내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시이 주도하는 삶으로 꾸려나가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 충실하게 되면 외부에 지원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

[법이나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할까]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판정해내는 데 안일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금지된 것에 복종하고 말지. 그에게는 그것이 쉽거든.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내부에서 그 금지된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단 말이야. 그들에게 금지된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매일 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허용된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금지되어 있는 일일 수도 있는거야. 요컨데 사람들은 각자 독자적이어야 하는 거지_Hermann Hesse<데미안(Demian)>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엄청난 보상이 따르는 신나는 일이다.

[사회화와 전통의 거부]
개인도 그렇지만 세상도 발전을 하는 것은 사회에 적응하고 무슨 일이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일탈하는 사람들 덕택이다.
삐뚜름한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자주적 사고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다.
합리적인 법이나 규칙도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의무에 매달리는 복종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이다.
시키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훨씬 맘 편할 때가 많다.
사회화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리고 최대한 효과적으로, 그리고 묵묵히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반드시 그 일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양처럼 순종할 때 당신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길 원한다면 그들은 그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다. 수선을 피우는 것은 거의 어김없이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킨다. 자신에게도 더 많은 걸림돌을 만들어 낸다. 조용히 우회하는 편이 훨씬 수월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대개 한때 비난을 받았다.

[머스터베이션에 빠지는 이유]
온갖 의무에 따르면서 착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머스터베이션을 없애기 위한 전략]
새롭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내 마음의 심지를 자신의 내부로 옮길 수 있는지 알아보라.
어떤 결정을 내릴 경우 옳은 결정이나 그른 결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할 것.
외적인 보장에 기대지 말고 자신을 믿고 결정을 내려라. 당신이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오로지 자신만의 문제이니만큼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라.
자기 자신이 바라는 위치를 찾아라.
대화하다가 다른 사람을 화제를 삼지 말 것. 험담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상황, 생각에 대해 이죽거리거나 트집을 잡지 않도록 연습하라.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 것.
자신도 모르게 비난을 해버리고 말았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 그 목표를 입 밖에 내어 말하면 비난하기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불행은 어떤 경우건 결코 다른 사람 탓이 아니라 내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내가 불행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나를 지배하게 될테니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늘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의무에 대한 믿음은 확 줄여라.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사람드의 행위가 아니라 그런 행위에 대한 내 반응이라는 점을 잊지 말것.
"저 사람들 행동 때문에 내가 왜 괴로워해야 하지?"

[관습의 장벽을 깨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평가하고 자신을 신뢰하면서 그때 그때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마음 가는대로 나만의 행복의 노래를 부르라. 행복이란 모름지기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공식을 만들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정의 덫을 피한다]
세상이 너무도 질서정연하고 모든 것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면 어떤 생물도 하루를 버텨나지 못한다.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어찌 모든 이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부질없는 외침 '불공평해!']
"불공평해!"라는 외침은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보편적인 자기 파괴적인 한탄 가운데 하나다.
공평함은 외부지향적인 개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신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보라.

[질투는 자신을 멍들게 한다]
질투를 '영혼의 편견'이라고 불렀다. 질투로 인해 눈이 멀거나 또는 자신의 마음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실 질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질투는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된다. 질투란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잡힙 행동일 따름이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의 증상]
"우둔한 일관성은 꼬마 도깨비 같은 째째한 마음이다"

[더 이상 정의만을 고집하지 않으려면]
"내가 화내면 저 부당함이 사라질까?" 분명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그것을 나의 감정에 개입시키지 말 것.
결정 하나하나가 인생에 무슨 큰일이라도 나게 하는 것처럼 호들갑떨지 말고 지켜볼 것.
대놓고 비교하는 말을 하지 말 것.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목표를 갖는다.
"그냥 당신이 정말 좋은 사람 같아서요"
굳이 어떤 상황에 맞추지 말고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좋은 일을 하라.
선물을 할 때는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지출 규모를 잡을 것.
외적 기준이 아닌 내 마음이 정한 기준에 따라 누구를 초대할 것인지 결정하라.

[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어떤 일을 미루는 데에는 땀 한 방울도 필요하지 않다.
하면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 것은 뒤로 미루는게 아니라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기다리면 나아지겠지'의 덫]
형편, 입장, 일어난 일, 사람은 저절로 좋아지는 법이 없다. 내 삶이 잘 풀리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 건실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뒤로 미루는 것은 오늘을 잡아먹는 행위다]
말을 앞세우지 말라. 그러는 사이 당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버린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레와도 같아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당신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만든다.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비평가인 경우가 많다.
비평가가 되기는 쉽지만 행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과,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자신을 변화시킬 의지가 필요하다.
얼마간 두각을 나타냈던 뛰어난 인물들을 주목하라.
그들은 내로라하는 행동가들이다.
진정한 행동가들에게는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시간 따위는 없다. 행동하느라 눈코 뜰 새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비교적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평하기보다는 그를 돕고자 한다.
행동가가 아닌 관찰자의 역할을 택하면 성장할 수 없다.
남의 흠을 잡는 사람, 스스로 비평가라 칭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또한 나에게도 그런 비평가 기질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하자.
따분함이라는 것은 현재를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분함은 선택이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뒤로 미루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가로 현재를 내놓는 행위다.
따분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따분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따분하게 느끼도록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사람은 따분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_Samuel Butler
 선택은,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달려 있다.
'내일'은 영영 오지 않는다.
뒤로 미루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근거의1/3은 자기 기만, 2/3는 현실도피다.
자기 기만에 빠져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현재 자신이 행동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한 전략]
5분 단위로 생활할 것.
만족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일을 미루지 말라.
일단 시작해보면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시작하는 것만드로도 그 일에 대해 품고 있던 불안이 사라질 테니.
"미루고 있는 일을 지금 실행에 옮길 경우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가?" 자문해 볼 것.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파악하면 그 두려움에 얽매일 이유가 사라진다.
시간을 정해 당신이 미뤄오고 있는 일에만 전념해 볼 것.
현재의 당신을 유심히 들여다볼 것.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기피하려 드는지 확실히 하고, 과연 내가 효율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도록 하라.
자신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것. 그리고 자신이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그러지 않다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라.
망망한 시간의 바다 앞에서는 30년이나 6개월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 전체가 한 점에 지나지 않다. 무엇이건 미룬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잠자리에 드는 바로 그 순간까지 피곤에 자기 자신을 내주지 말것.
입버릇처럼 붙은 "아마" 또는 "좋겠어""바랐는데"같은 말을 집어치울 것.
"일이 어떻게든 잘 됐음 좋겠어"를 "일이 잘 되게 해 보겠어"로 "일이 더 잘되길 바랐는데"를 "이제 이렇게 하면 꼭 잘 될 거야"로 "아마 잘 될거야"를 "하면 잘 될거야"로 바꿔라.
스스로에 대한 불평이나 다른 사람을 비난한 행동에 관한 일기를 쓸 것.
하나는 나의 비판적인 태도가 생활에 어떻게 드러나는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약속을 곧 실천에 옮기겠다는 내용을 담은 서약서를 가족이나 애인과 함께 쓸 것. 서로 한부씩을 갖고 있고 그 내용을 어길 시의 벌칙도 정하라.
세상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세상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 무언가를 하라. 자꾸 미적거리는 버릇 때문에 갖가지 불안과 고민을 끌어안고 살면서 현재의 순간들을 소모하지 말고, 그 짜증나는 오류지대를 통제하여 현재를 살아라! 몽상에 빠지거나 요행을 바라거나 비판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

[다른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든,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관계는 결국 반쪽의 두 사람이 한데 모인 것이다.
심리적 둥지를 떠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정신적 자립이란 온갖 의무 관계, 그리고 타인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는 일에서 온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무관계가 없었더라면 아무래도 하지 않았을 일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둥지를 떠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는 소윰물이 아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를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 부모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부모라는 사실이다.
자신감이란 물건처럼 손으로 건네질 수 있는게 아니다. 자녀들은 자신감 넘치는 부모를 바라보고 직접 체득해야 한다. 부모도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녀들을 위해 늘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음으로써 자녀들이 자신감을 갖도로 가르쳐야 한다.
의무나 책임감이 따르지 않는 바람직한 부모 자식 관계를 살펴보면 부모가 자녀를 친구처럼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윺물 다루듯 함부로 대하는게 아니라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부모는 의존보다 자립을 키우며 자립하고자 하는 정상적인 욕구에 울고불고 난리르르 부리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이 우선이다]
그런부모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가정의 화목도 있을 수 없기 때문디ㅏ.
자신감과 자긍심을 키우려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느느 것을 알고 있기에 자기가 겪었던 어려움을 어느 것 하나 굳이 피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녀가 그런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애써 빼앗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는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대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다-Dorothy Canfield Fisher<며느리(Her Son's Wife)>

[결혼, 의존이 아닌 독립]
결혼이란 평등한 자립과, 상호 의존과 상호 보완적인 의무로 맺어진 남녀 간의 관계다.
의존과 의무라는 귀에 거슬리는 낱말 두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나 요구를 하지 않고 원하는 바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관계다. 서로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위해 선택하지 않은 일을 상대방에게 결코 기대하지 않는 두 사람이 결합한 관계일 따름이다. 결혼은 의존이 아닌 독립을 바탕으로 한 결합이다.

[지배하려 하지 말고 인정하라]
의존과 사랑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에서는 함께 하는 가운데 약간의 거리를 둬야 부부간의 금실이 더 좋아진다.

[의존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처신했길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까?"라고 자문해보라.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고 상대방의 반응을 바꾸도록 시도해보라.

[의존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
의존은 언뜻보기에는 해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은 모든 행복과 성취의 적이다.

[자립을 선언하기 위한 전략]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를 명시하는 '자립 선언서'를 작성해 볼 것.
부당한 조종을 절대 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아라.
내가 종속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와 얘기를 나눌 것.
부모, 배우자, 상사, 자녀 등 나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피하지 말 것. 그들 때문에 심정적으로 잔뜩 움츠린 상태라면 그들이 옆에 없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꼭 찾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볼 것. 나라면 누군가가 단순히 의무감만으로 찾아와주길 바랄 것인가 자문해보라. 내가 찾아가야 할 그 사람도 마찬가지 심정일 수 있다.
의존적으로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것.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금전적으로 손 벌리는 일이 없도록 경제적 독립을 할 것.
나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 곁을 떠나라! 스스로르르 자유롭게 하라! 명령을 하지도, 받지도 말라!
모임에 참석하면 배우자와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라. 따로 떨어져 있다가 모임이 끝날 때 다시 함께하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두 배는 많을 것이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나의 감정 변화가 내 탓이듯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자신의 감정은 자신밖에 통제할 수 없다.
버릇이 어떤 일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할 것.
자립이란 효율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또는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결혼의 대표적인 특징 역시 최소한의 타협과 최적의 자율, 그리고 자시 신뢰다.
당신이 자립하면, 특히 당신을 종속적으로 가둬두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큰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둥지는 자녀가 자랄 수 있는 멋진 곳이다. 그러나 둥지를 떠나는 것은 훨씬 멋있는 일이며 떠나는 이의 눈에도,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이의 눈에도 아름답게 비칠 수 있다.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화의 유일한 해독제는 '도대체 왜 저모양일까?"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지 않는 것이다.
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화는 지니고 있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며, 행복하고 알차게 살아가는 데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자기현실의 오류지대다. 그러니까 일종의 정신적인 독감 같은 것이다. 한 번 화를 내면 지독한 독감에 걸릴 때처럼 기운이 쭉쭉 내려 앉는다.
화라는 것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경험하는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반응을 가리킨다.
화의 핵심어는 '통제불능'
화는 버릇이자 선택이다. 실망을 느낄 때 나타내는 몸에 밴 반응으로 결국 후회하게 될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사실 심하게 내는 화는 일종의 정신 이상이다.
화를 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보상은 없다.
화를 표출하는 것이 누르고 있는 것보다 훨씬 건전한 대안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건강에 좋은 대안이 있다. 아예 화르르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를 분출해야 할 것인가, 혹은 담고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 아닌가.
모든 감정이 그렇듯, 화는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도 꼭 화를 내야 겠거든 어떤 식으로든 화를 터뜨려라. 단 파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러나 이제부터는 실망할 때, 자시는 새로운 생각으로 그 실망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화는 없앨 수 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안을 때 일어나는 해로운 감정 반응인 화는 제거가 가능하다.
진정으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화를 낼 필요를 없애는 데 보탬이 될 참신한 말들을 되뇌일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저 스스로 바보가 되고 싶다고 자처하는데, 내가 화를 낼 필요가 뭐 있어?바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저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상황은 내 생각대로만 굴러가지 않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나 자신을 옭아매지는 않을거야'
배짱 두둑한 새로운 방법으로 화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 말로 화라는 오류지대를 제거하기 위해 내디뎌야 할 첫걸음이다. 그런 다음 외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나름의 심지를 갖도록 생각을 바꾸는 것, 즉 다른 사람의 행동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웃음은 영혼의 햇살이다. 햇빛이 없이느느 어떤 생물도 자라거나 성잘할 수 없다.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행동을 취할 때 화를 내고 안 내고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물 한컵 더 뭇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내가 웃음을 택하든 화를 택하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웃음을 택하면 현재의 순간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이요, 화를 택하면 현재가 비참하게 망가질 것이다.

[화의 원인]
화는 암이다.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암으로, 인간 관계를 속속들이 좀먹는다.

[화를 이기려면]
화를 내고 있는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늘상 그런 식으로 생각해왔다고 해서 계속 똑 같은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화를 내는 상황을 '희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화를 내는 것을 뒤로 미루려고 노력할 것.
화를 내는 '시늉'만 할 것!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것
화를 냈을 때의 일을 기록할 것. 화를 낸 정확한 시간, 장소, 상황에 대해 적어라. 기록은 엄정하게 해야 한다.
화를 내버렸다면 "방금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어. 이제 다시는 화를 내지 않도록 생각의 시각을 바꿀거야"라고 말할 것.
화를 낼 참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 있도록 노력할 것.
화가 나 있지 않을 때, 평소 가장 많이 화를 내는 상대와 대화를 할 것.
일단 그 10초가 지나가면 화는 대개 기가 죽는 법이다.
자신을 사랑할 것, 그러면 자신을 망치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짐지우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보라.
화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하등 쓸모없는 짓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그들은 너무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머지 주위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릴 여우가 없다.
그들이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무슨일을 해도 즐거워하며, 불평하거나 이미 지난 일에 매달리며 허송세월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의에 차 있으며, 삶에서 최선의 것을 구하려 애쓴다. 그들은 나들이, 영화, 책, 스포츠, 콘서트, 도시, 농장, 동물, 산 등 거의 모든 것을 즐긴다. 그들은 삶에 애정을 갖고 있다.
결코 투덜대는 법이 없이 즐긴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있는 그대로 대처한다. 그들에게 짐짓 즐기는 척하는 가식이 없다. 상황을 분별력 있게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기쁨을 찾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 할 뿐이다.
그들은 분명 인생을 즐기고, 인생에 흠뻑 젖어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들은 매우 현재 지향적이다. 어떤 걱정이건 질질 끌어서는 안된다고, 현재의 삶을 살면서 이리저리 기웃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지시키는 듯한 내부 신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색다르고 낯선 경험을 찾아나선다. 그들은 애매모호함을 사랑한다. 현재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현재를 음미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갖가지 즐거움을 얻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만일의 경우에는 대비하지만 뒤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해동이 사회에서 직책을 받을 경우에도 자신을 책망하면서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의 행복을 긁어모으며, 미래가 현재가 되면 그 행복도 쓸어 담는다. 그들은 즐거워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아둔한 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항상 현재를 즐긴다.
이런 사람들은 연애도 요란스레 하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상대를 고를 때에는 꽤나 가리는 편이지만 매우 섬세할 정도로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립적이고, 스스로 선택할 줄 알며,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들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기대지 않는 사람이기를 한층 더 바란다.
그들은 퉁명스러운 정도로 솔직한 편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줬으면 하는 터무니 없는 바람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은 외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운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들은 불합리하고 소소한 규칙들은 무시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기준이며, 사회를 매우 ㅣ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회의 통제를 받거나 예속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사회에 반기를 들고 나서지는 않지만, 명쾌하고 합리적으로 무시해야 할 때와 본분에 충실해야 할 때르르 스스로 판단한다.
그들은 웃는 법, 웃음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유머를 찾으며 아주 어처구니 없느느 상황, 매우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도 웃어넘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일을 즐기며 편안하게 웃음을 자아낸다.
그들은 앞뒤 맞지 않는 일도 좋아한다.
결코 다른 사람에 대해 입방아를 쩧어가며 웃음을 자아내지 않는다.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웃는다.
삶에 대한 태도는 진중하지만 삶에 대해 웃음을 보낼 줄 알며 모든 것을 즐겁게 바라본다. 그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인생을 관망하며,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함께 즐길 줄 안다. 그들은 함께 하면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과 관련된 것은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는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묵묵히 실천에 옮기기만 한다. 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어린아이들이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껏 즐기는 것처럼.
그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없다.
그들에게 조직이란 목적 자체가 아닌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 조직에 지난치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창의적이다.
그들은 그런 일에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정해진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 호기심은 채워질 줄을 모른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혹여 잘 되지 않거나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 해도 곱씹어 한탄하지 않고 미련없이 체념한다. 그들은 계속 배운다는 점에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다. 항상 더 많이 배우는 일에 열심이고 자신이 완성품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들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다. 아무리 배워도 부족하게 느끼며, 남을 깔보거나 젠체할 줄도 모른다. 그렇게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상황, 사건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이 행복한 사람들은 놀라운 정도로 자기 변명을 하지 않는다. 잔버리를 굴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위해 옷을 입지도 않는다. 자신을 해명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꾸밈없고 자연스러우며, 일이 크든 작든 간에 문제 삼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논쟁을 일삼거나 토론을 하면서 조급증을 내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자심의 견해를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뿐이다.
"좋아, 우리느느 생각이 다를 뿐이야. 의견이 꼭 같으리란 법은 없지"
어떤 사람이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잘 됐다고 생각하지, 배 아파하지 않는다. 어떤이와 경쟁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이 선전하기를 바라지,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그 사람이 실수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사실 그들은 너무 바빠 주위 사람들이 뭘 하는지 주목할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에 자극받으며, 갈림길에 섰을 때 항상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자기 연민이나 자기 부정, 자기 혐오에 빠져 있을 틈도 없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가?"라고 물어보면 대뜸 "좋아하다마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할 것들이다. 그들은 진정 '난사람'들이다. 하루하루가 기쁜이다. 그들은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알차게 음미하며 산다. 힘든 일이나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감정의 늪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들의 정신 건강을 가늠하는 잣대는 그들이 실수를 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실수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오류지대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무지개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보상으로 행복을 얻을 뿐디다.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만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도 없다.
'일상 속의 순간 순간이 행복을 품고 있다.'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 알차게 살라. 그러면 우리는 주변인이 아닌 행복한 이기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인생은 단 한 번뿐]
'인생은 단 한 번뿐'입니다. 삶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습니다. 어제 죽을 뻔했다가 오늘 새 생명을 얻었다 생각하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세요. 잔뜩 찌푸릴 대로 찌푸린 하늘마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이 세상이 얼마나 살 만한 곳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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