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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잖아_/Diary_

존재_

새벽 2시 40분_ 드르륵 드르륵_ 침대위에서 요동치는 전화를 무의식중에 받고 몇초 지나지 않아 나는 정신이 확 들었다.
오래전_ 지웠던 전화번호였다. 휴대폰에서 지워진 번호가 내 머리속에는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잊는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내가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멋있지 않다. 열정 같은거 없어 보인다. 세상과 부딪치면 만신창이가 될 것만 같다.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저 한없이 무던한 그가_그런 그가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이유는_ 그의 존재감 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_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_ 나에게 그들이 되어주고 기둥이 되어주었던 그다.
자랑할 만한 추억도 없으며, 누구처럼 제대로 데이트한번 해본적도, 손한번 잡아본 적도 없는 그가 나에겐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 존재감이란 것은 실로 놀랍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이후_ 힘든일이 있을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 그리고 이름 석자_ 그게 그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_ 할말이 남아있다. 왜냐하면_ 꼭 해야 할 말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그래고 해야 할말도 들어야 할 말도 많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알았다.

용기를 냈던 것인지, 술에 취한 건지_ 나는 알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는 술취한 사람의 용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또박또박 했다. '내일 문래동에서 기다릴게요'라는 말_에 나는 기다렸다. 퇴근하고 지하철 역에서서 그렇게 기다렸다. 지난번엔 3시간을 기다렸었으니까_ 이번엔 한시간만 더 기다리자_ 다짐하고 기다렸다.
아주 오래전 그때도 그랬었다. 아마_ 술이 문제인걸까_ 그때도 이번에도 나는 그랬다. 나에겐 꼭 들어야 할 말과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나는 꼭 만나야 했다_ 꼭 한번은 그래야 했다. 10시 30분이 되었다.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아마도 아직 용기를 못낸거겠지_

마음속에 눌러뒀던 많은 것들이 움직인다 안에서_ 괴롭다_ 많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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