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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CANADA(2008)_

가슴앓이 [밴쿠버]

하루_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일주일이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
하루하루 그렇게 서른번이 모여 결국 11월을 고스란히 보기좋게 삼켜버린다.
그렇게 서른밤을 자고나면 2011년은 꼴깍 깔끔하게 먹혀버리는거지.
어쩜 한치의 오차도 없다.
전자계산기 같다.
전자계산기가 시간 같은건가?
암튼 빈틈없이 정확하다.
그래서 야속하고 살짝 빈정도 상할라 그런다.
쫌, 봐주면 안돼? 하루쯤은 '옛다! 보너스!' 시원하게 하루쯤 던져주면 좋을텐데, 그런건 생각도 말아야하는거다.


앨범을 새로 정리하면서 옛날 사진들을 들춰본다.
그러다가 밴쿠버에 잠시 머물기로 한다.

더없이 낯선 땅,
요술 방망이로 공간이동을 한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세상이 너무 친숙한듯 낯설었던. 그것은 공기 때문이었을게다.
그토록 낯설던 공기가 이토록 그리운 건_ 그래, 이미 난 입맛을 베린게다.
그 공기에 이미 취해 버렸고, 이미 길들여진 이유다.
그러니, 그리워 한다고 징징대는거 하나 이상할거 없다. 이해못할 바 아니다.
그러니 눈치보지말고 실컷 그리워해! 괜찮은거니까..



처음, 마음을 붙인 곳 지오스. 작은 랭기지스쿨.
정말 손바닥만해서, 이리가도 저리가도 아무리 피하고 또 피해도 같은 사람을 하루에 열번은 마주치게 되는 곳.
그게 좋았다.
보고싶은 사람을 또 볼 수 있으니까.
물론 보고싶지 않은 사람을 또 볼 수도 있다는 취약점은 있지만,
다행히 보고싶지 않은 사람은 기억에 없으니, 좋았던 점만 남는다.
같이 도시락 먹던 기억도 생생하고, 액티비티 올라온게 뭔지 맨날 들락거리며 보던 게시판도 그립다.



Hello,한마디에 얼굴이 시뻘게지던 나는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었다.
수다쟁이가 된 건, 주변인들의 열화와 같은 부추김과 관심 덕분이었다.
좋은 선생님들의 응원이 내 기를 살려주었다.
시뻘겋게 닳아오르던 얼굴은 철면피같은 낯두꺼운 사람으로 둔갑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나는 좋았다.

한국말을 할 때보다 영어로 떠들때 나는 더 뻔뻔해 지는 경향이 있다.
외국 친구들과 대화 할때도 나는 당당하다. 말을 잘해서?
아니!
'너 한국말 할줄 알어?'
'아니'
'그래, 넌 한국말로 인사도 할줄 모르지만 난 너랑 이정도 얘기를 할 수 있다구!'
한국말 한마디 못하는 너에 비하면 나는 너희말을 너무나도 잘하지 않느냐는 억지스런 말로 늘 뻔뻔하게 들이대던 내 모습_
그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뻔뻔함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 뻔뻔함, 근본없는 자신감이 노랑머리와 웃고 떠들게 하는 원천이다.

지오스 친구들이 그리운건_
다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들도 나와 꼭 같이 인사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고 했었으니까.
그 모습이 참 인간미 넘쳐 보였다고 해야하나_
그랬다.

지금도 여전히 틀린 표현을 일삼지만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법도 틀리고 때론 잘못된 단어 선택도 한다. 그리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어휘력이 달려 표현이 참 저렴하고 궁색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표현하고 만다.

배고플때 배고프다고 할수 있고, 아플때 아프다고,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한거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I miss you"




유독 파랗던 하늘_
그래서 난 캐나다 앓이를 해온지도 모른다.
파랗던 하늘은 늘 저 허여멀건한 구름위로 둥둥 올려보냈다.
파란 하늘 덕분에 유독 하늘을 더 많이 올려다 볼 수 있었던 기억_
원래 하늘과 무지 친했던 것 같이 굴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알았다.
하늘과 무지 친했던건 아니라고, 그러니까 한국 하늘과는 그닥 친하진 않았던거다.
캐나다의 하늘과 스페인의 하늘,
조금은 닮았다.
새파랗던 빛깔도 닮았고, 자꾸만 고개를 쳐들게 만들던 그 습성도 닮았다.
그러고 보니 빛깔도 닮았었구나. 쨍하게 내리꽂던 태양의 디테일을 기억한다.
그래. 많이 닮았었구나.
어쩐지 스페인에서 그 하늘과 태양, 참 낯익다 했어..



스카이트레인 타고 싶다.
제일 앞자리 앉아서 몇바퀴고 뺑뺑 돌고 싶다.
강도 건너고, 바다도 구경하면서 그냥 둥둥 그렇게 떠다니고 싶다.
해 떨어지는 것도 보면서.
그냥 하릴없이 밴쿠버를 쭉.. 돌아버리고 싶다.
그러면 그리움이 조금은 잦아들 것만 같다.



눈이 곧 쌓이겠지.
작년 겨울은 유독 많이 추웠다고 했는데.
밴쿠버 날씨는 변하지 않았음 좋겠다.
적어도 여름 날씨 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음 좋겠다.
설질 좋은 곳에가서 보드도 타고 싶다.
겨울 가득찬 록키는 얼마나 환상적일까.
얼어죽을지도 모르지만,
록키에서 얼어죽는건 어쩐지 서럽지는 않을 것 같다.



가끔씩 Fido 벨소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벨소리..
6개월간 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녀석_
역시 후회 한자락 남는다.
다빈이에게 선물로 주고 온건 잘했지만,
6개월간 나와 동거했던 녀석을 떼어보낸건 그닥 인간적이진 못했다.
녀석을 한국에 데려왔더라면 일없이 벨소리를 울려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 많던 사연 깊은 문자들도 홀랑 버린 나는 너무 냉정한 사람이었 던 걸까..?



UBC대학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놀러갔던거 이제는 고백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았다.
사실 덜 열심히 놀았다.
정말 열심히 놀고 덜 열심히 공부할걸.. 하고 생각한다.
늘 뒤늦은 생각의 변화는 이성적이고 거기다가 이상적이기 까지 하다.
그래서 뒷북은 종종 훌륭하게 가슴에 맺혀 버리기도 한다.
한국인들과의 공식적인 첫 대면이었던 것 같다.
그래봐야 몽땅 동생들이었지만,
나는 가능하면 길게_ 내 나이를 숨겼다.
누나소리 듣기 싫어서_ -.-




챕터스_
내 아지트였다.
다운타운의 중심부에 있던 챕터스에는 책도 책이려니와 이쁜 문구들도 많았다.
조용하게 이해도 못하는 영어 책들 열심히도 뒤졌었다.
세일하던 책을 한권 집어온 녀석은 바다건너 한국에 왔지만 아직도 팔리지 않는 책방 구석차지와 별다를바 없다.
책욕심만 많았지, 내용도 수준도 모르고 고른책이 재미있을리 없지.
미안하다.
너는 그냥 내 추억의 한자락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니.

챕터스 입구 구석에 있던 스타벅스가 또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잘 가지 않던 스타벅스,
캐나다에서는 매일 도장찍던 곳.
유학생 주제에 별다방 커피나 마시고 다녔다고?
달러로 생활하다보니 커피값이 비싸단 생각이 안들었어. ㅠ.ㅠ
곡물 바_ 넘넘 먹고 싶다. 한국서는 그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_
널 폭풍흡입하러 가버릴거야!
화이트 초코모카와 함께!

생초콜렛을 녹여 만들던 화이트 초코모카_
한국에서도 그러는줄 알고 주문했다가 엄청난 배신감에 한동안 새침해 있었던 기억_




스탠리파크를 한바퀴 돌다가 만난.
공원 뒤켠에서 열심히 준비중이던 무대.
EAW였던 것 같은데, 모델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놈의 단기기억_
햇살이 참 좋았다.
무슨 공연을 할까_ 궁금했으면서도 저 자리를 비껴간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 졌는데.
그래_
그놈의 남자사람때문이었다.
그때 내 옆구석에 남자사람 하나 붙어있었다는걸 그새 망각했다.
제길_
XY염색체를 가진자들은 있어 줘야 할때는 잘 없다가도 없어도 될때 꼭 옆에 잘 붙어 있어준다.
디지게 고맙다!!!!



가까운 여름.
스페인 앓이에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제2의 고향 밴쿠버.
역시 고향이구나 생각이 든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_
그래, 언제든지 갈 수 있어.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야.

하지만 여름이어야해.
그래, 겨울은 한국의 징글징글한 추위로도 충분해.
겨울에는 뜨거운 동남아 에서 살면 징글징글 추위가 그리워 지기도 할까?
그런날도 올까?

바람이 차던데.
내가 꼭 겨울을 미워해서가 아니야.
날 춥게 만드니까 그런것 뿐이지.

밴쿠버의 겨울은_
내 기억에 없으니까.
추운 겨울에도 밴쿠버 앓이를 하는건 참 기분좋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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