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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하는일엔 행운이 따르죠_

앞서 보낸 자 요셉 - 김남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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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낸 자 요셉 - 김남국

sori4rang_ 2018.08.10 16:27


삶의 맥락을 만들어라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지나간 것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현재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체적인 역사, 즉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을 통해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창세기 1~11장은 세계의 창조와 인류의 시작에 관해 설명하면서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류의 운명에 대해 알려줍니다.
12~24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역사에 개입하여 직접 믿음의 역사를 이끌어 가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아브라함과 약속하기 훨씬 전부터 인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과거를 온전히 알아야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신앙은 하루 싸움입니다. 하루가 모여 삶이 되고, 그 삶이 개인의 역사가 됩니다.
그러나 영혼만큼은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하나님께 묶이면 역사가 됩니다.


꿈의 사람, 요셉에 대한 오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과 유다가 가장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두 배의 몫을 받는 장자권은 요셉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치리권은 유다가 차지합니다.
요셉은 영화의 상징, 신학적으로 구원을 칭의라 하고, 신앙이 자라는 과정을 성화라 하며 완전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칭의는 구원을 받을 때 나는 의롭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화는 야곱처럼 평생 좌충우돌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입니다. 
영화는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갈 때나 가능한 상태입니다.

억울하게 모진 고생을 다하고 괴로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입니다.
철부지 소년 요셉이 넉넉하고 명예로운 멋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품는 것입니다.

품을만한 실력을 갖추려면 그만한 믿음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큰 구원을 앞서 보여 준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지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성체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

요셉이 꿈을 꾼 것은 그를 이끌어 가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끌어 가신 것입니다. 요셉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고 하나님이 만들어 가셨기 때문에 그의 꿈이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앞서 보낸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시105:17)

하나님은 요셉을 앞서 보내 고난 속에 잘리고 쓸리고 쪼이고 갈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그는 용모가 준수했지만 앞보다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선발대로 먼저 보냄을 받은자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까지 묵묵히 성실하게
요셉이야말로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PART1  하나님은 인생을 통해 일하신다 
CHAPTER1 아직은 쓸 만한 사람이 아니다

과연 요셉은 꿈꾸는 자인가?
십칠 세의 소년
정통성.
야곱의 족보는 17세 소년 요셉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주권적 선택

고자질, 정직함
요셉은 정직한 성품이라 못 견디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마련입니다.
말투, 
사람은 옳은 말을 듣는다고 해서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옳은 말을 하면 듣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의 내용보다는 말하는 태도입니다. 즉 어떤 마음으로 말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투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을 이끌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정직하지만 말을 했다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요셉이었습니다.
꿈에 걸맞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훈련시켜야만 하셨습니다.

요셉, 철저히 혼자가 되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은 사람의 지혜 너머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루를 사는 것 같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까지는 22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요셉은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요셉
형들은 요셉의 꿈이 지닌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하나님의 섭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욕심으로 꾼 꿈이라면 그냥 사라질 테고,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질 텐데..

감정적인 사람은 권위를 잃기 쉽습니다.
똑똑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
똑똑한 사람은 구덩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서든 잘 헤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명한 사람은 구덩이를 보면 미리 피해서 지나간다고 하지요.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하나님을 놓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밖에 안 보일 때는 그것만 해결하면 만사가 편할 것 같은데, 착각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마십시오. 문제를 더 큰 문제로 만드는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요셉은 성실하고 정직하여 자기 의가 많은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은 모르는 무디고 무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경솔한 성격이었습니다.
요셉은 어차피 애굽으로 앞서 보내지도록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조심하여 말하고 자기 마음을 잘 살피십시오.
신앙생활에서 자기점검이 1순위입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자신부터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의 잘못을 덮어줄줄 알아야 합니다.

유다, 치리권에 어울리는 자로 만들어 가시다
유다가 가나안 족속의 딸과 결혼한 것은 그의 영적 상태가 완전히 바닥을 쳤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그가 머무는 자리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영적으로 바닥을 치면 샤머니즘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본성으로 돌아갑니다. 사탄은 바닥을 칠 때를 노립니다. 사탄은 헛된 생각 속에 활개를 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신앙인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
'복음'이란 '좋은 소식'
'어떤 사람'이야말로 '좋은 소식'을 전해 준 복된 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게 되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힘든 사람을 기억하고 돕는 어떤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찾아와 준 '어떤 사람'
"너 자신을 위해 참아"
우리는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어떤 사람이 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길을 밝게 비추는 빛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탓하기
유다가 자기 잘못은 보지 못한 채 부끄러움을 당할 일만 걱정합니다.
거룩도 하나님이 그 마음에 계셔야 지키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생각은 않고 부끄러움을 당할 걱정만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대단히 큰 은혜입니다.
화개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셉과 유다의 부족함을 낱낱이 드러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선택된 것은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들을 계시에 합당한 자들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보지 마십시오. 당신이 철부지 요셉이자 타락한 유다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실패작으로 내버려두실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이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기필코 만들어 세우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해서 두려운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는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느끼기 시작하면 담대함이 솟습니다.
은혜가 머리가 아닌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역사할 것입니다.

고난 속에 성장하다
현실은 계속해서 추락하기만 합니다. 누가 봐도 망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형통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있을 때를 형통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끌어가시는 인생은 꼬인 듯 보이지만 실은 제대로 가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시키는 일마다 성공적으로 해내자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요셉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했습니다.
순종을 배웠고, 세상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작은 일을 가치 없다고 여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생에 주신 일 중에 가치 없고 작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형통케 만드십니다. 그 하나님이 있기에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하며 가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잘못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깊은 연단에 집어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피할 수 없는 사람, 피할 수 없는 관계, 피할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기준, 하나님의 명령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도망가는 것만큼 안전한 것도 없습니다.
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이 좋지 않을 때는 하나님 앞에 앉아 있으십시오. 그냥 그 앞에 우두커니 앉아라도 있으십시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힘을 추구하게 마련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 몇 줄이나 기록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어야 기록될 것도 있는 법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억될지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회개는 눈물로 때우는 후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일하실 때는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형통하려면 사람이 붙어야 합니다. 사람이 붙는다는 것은 그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성품과 실력을 갖췄으며 책임을 다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까닭 없이 연단하시지는 않겠지


CHAPTER2 가르고 쓸고 쪼고 엎고

바로, 내가 꿈을 꾸었다
종은 평안한데 왕이 불안해한다는 것
2년 동안 요셉은 입을 꾹 다물고 참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끝까지 서 있었습니다.
진정한 실력자
요셉은 어떤 분위기와 환경에서도 자신의 심령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이 그가 생각한 것과 달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을 붙잡고 묵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불안해하는 바로를 오히려 위로하는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준비된 만큼 쓰임받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런 상황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기막힌 인생 속에서 나를 만드시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리라는 것입니다.

요셉, 하루를 사는 데 성공한 사람
꿈풀이에 이어 바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요셉은 꿈풀이를 넘어선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13년간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어떻게 감옥이 애굽을 다스릴 총리를 기르는 최고의 훈련소가 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이 보기에 허망해 보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훈련받는 최고의 장소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요셉이 모든 과정을 잘 마치자 하나님이 드디어 그를 이끌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요셉은 내면이 숙성된 사람입니다. 바로 그 점이 멋있습니다. 당신의 신앙이 숙성되는 것을 방해하여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내면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를 써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기꺼이 훈련받겠다는 각오부터 하십시오.

신앙은 자기 능력과 실력으로 지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사는 자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통을 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기에 인내하며 살았고,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것을 알기에 오늘을 살아 냅니다.

은혜는 한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붙잡는가 아닌가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고난을 견딜 수 있고, 기도하면 시련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때, 요셉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원망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원망과 불평 대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시 앉아서 원망할 수 있지만, 계속 그렇게 산다면 그때부터는 당신의 문제입니다. 의지가 삶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말로 위로해 주고 끝내는 것만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정신 차리고 감정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자기연민에  빠질 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훌륭한 삶은 실력이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루를 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은 하나님의 때에 정확히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훈련과 인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나태해지면 어떤 공격에도 치명상을 입습니다. 나태해지면 허송세월합니다.
중요한 것은 재앙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준비된 자에게 재앙은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과 사람을 탓하지만 말고, 오늘 하루를 잘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거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주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시간의 두려움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하니님은 인생을 통해 일하십니다.


PART2 앞서 보내 뜻을 성취하신다 
CHAPTER3 인생을 다듬어 세상에 내놓으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매우 선명하고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성도, 구별된 자 / 천하의 악질, 저질, 악당
얼마나 악질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죄에 찌든 자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자녀 신분인데 수준은 아직 저질인 것입니다. 성화란 저질의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벌은 혼내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를 떳떳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성도의 사랑이고 지혜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서는 지혜가 나오지 않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혜란 내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자 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토론할 때 자기가 원하는 것만 주장하는 사람은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하나 되게 할까를 고민하며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은 지혜를 냅니다.
지혜는 다른 사람을 세우려고 할 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선물입니다. 지혜를 얻고 싶다면 내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세워 줄 수 있는 마음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믿음은 환란 가운데 드러난다고 합니다. 신앙의 크기는 문제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이 자랄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알려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내용을 중복하여 기록합니다.

판단과 분별력
성품과 기질
중요한 것은 그 기질과 성품이 하나님 안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감정이 신앙은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은 감정의 기복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열심과 정성이 아무리 많아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알맞게 거절하는 것도 실력입니다.
때로는 실력이 없어도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순종 또한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일을 감당하며 살면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일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안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핵심을 정확히 짚어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얘기가 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늘 급한 것을 좇느냐 아니면 중요한 것을 좇느냐의 싸움입니다.
급한 것은 즉각 드러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숙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돌아볼 줄 알게 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정답'으로는 안 됩니다. 정답은 맞는 말이지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대안 없이 문제만 지적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대안이 있어도 방법이 좋아야 합니다.
더욱 겸손하게 상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십시오.

바라보다. 마주 대하다
신앙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묶어 주신 사람들과 인생을 엮어 가는 것입니다. 옆 사람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이곳에 묶으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승전하나님
삶 속에서 오랜 시간을 통해 증명됩니다.


CHAPTER4 삶을 통해 증명하라

요셉의 첫 번째 검증, 변화되었는가?
요셉의 두 번째 검증, 신뢰를 얻었는가?

유다는 이 사건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신앙이 자라면 가장 어려운 것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잘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무서움은 한번 죄를 지으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용서를 받아도 죄가 스친 과거가 여전히 함꼐 간다는 사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신앙을 사람과 환경의 문제로 푸는 사람은 신앙적으로 성숙한 자가 아닙니다. 신앙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베냐민에게서 허물이 발견된 상태이지만, 유다는 조목조목 따집니다.
죄를 지을 때는 그 크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죄의 크기는 우리 안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알면 그렇게 안 할 것입니다.
오늘 입술을 꾹 다물고 참은 것이 훗날 내게 어떤 열매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참지 못하고 터뜨린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알지 못합니다.

유다의 희생이 베냐민을 살리고 형제들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처리자의 전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신앙은 책임입니다. 책임은 말이 아닌 삶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한 일과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고 대속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세워 주고,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은혜가 되는 명예로운 성도가 되십시오.

요셉, 먼저 보냄 받은 자
하나님이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역은 우리가 보는 시야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고백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세대를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변방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조건을 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독이 됩니다.
언약의 민족 이스라엘
요셉은 과거의 일을 문제 삼아 다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과거 문제와 잘못이 하나님이 세워 가시는 역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말 한마디가 공동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느낌과 생각은 현실과 180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계입니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기가 느끼고 경험한 것밖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인간은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의식할 때만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족하도다 고백하는 인생
내 인생이 참 족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만족을 넘어선 감사를 표현합니다.

하루하루 나를 만드시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 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족함과 감사를 배우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심을 발견하고, 인생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때 족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가겠다는 용기


PART3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걸어가라
CHAPTER5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 

두려워하지마라
정말 미안해하는 마음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정말 미안해하는 사람은 대가를 치러도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이사한 곳이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현장이 되고, 어쩌다 순종하며 간 길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길인 것입니다.
당신의 삶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한숨과 절망뿐이라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가면 믿음의 열매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 곧 큰 구원을 보는 길입니다.

믿음의 열방이 되라
"유혹이 닥칠 때마다 네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잊지 마라"
하나님의 존귀한 자라는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사람이 어떤 것을 옳다고 결정하여 정의를 내리는 순간, 틀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판단과 상대방의 시각이 100퍼센트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이 지금 있는 곳에서 한 발짝 떼면 필요 없는 것이 되고, 필요 없던 것이 필요한 것이 된다" 그러니 '필요없다, 쓸모없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겪게 하시는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고센, 천국을 준비하는 곳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신앙은 선택을 포함합니다. 자신이 머물 곳을 선택합니다.
눈과 귀가 어디에 있는가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언약 백성은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볼품없어 보여도 성도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계속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무엇엔가 마음을 빼앗겼다 싶으면 얼른 빠져나와야 합니다.

평소에 주변을 잘 정리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제 부르시든 '아멘' 하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 소망을 가진 자가 땅의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법입니다.
아이가 있음으로 누군가가 기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거룩한 삶을 추구하십시오. 당신이 바로 축복의 통로입니다.

언약 백성은 애굽에 잠들지 않는다
겪어 봐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비전은, 첫째 성화의 과정을 통과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삶을 통해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어야 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명은 실력이 있어야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마음과 실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성화가 되지 않고 직분만 받으면 사람이 무서워집니다.
가정, 직장, 교회 세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실력을 쌓아야 하며 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 영역이 모두 안정되어야 신앙도 안정됩니다.

하나님이 겪게 하시는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CHAPTER6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다 

요셉의 장자권과 야곱의 축복
감정적으로 산다는 것은 훈련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마음의 욕망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쁜 성질을 고치게 하는 것이 축복이고 그냥 놔두는 것이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담으려면 그릇이 넓고 커야 합니다.
부정적인 면을 잡아야 인생이 아름답게 풀릴 것이라고 알려 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길 바랍니다.

바른말도 전하는 방법과 자세가 옳아야 비로소 옳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해야, 축복의 말을 해야 축복이 임합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 평안이 돌아옵니다. 축복을 해줘도 받을 만하면 받고 아니면 못 받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분량대로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릇을 넓히십시오.
먼저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스스로 자기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죽이고, 그릇을 넓혀 놓으면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성질대로 사는 사람은 절대로 그릇을 넓힐 수 없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나의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길을 성실하게 따라온 자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십니다.

자리를 삶의 목적으로 삼은 적이 없으므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자리가 목적이 되면 위험합니다.

요셉은 인생을 하루씩 살았습니다.
과거는 주님께 맡기고, 미래는 주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요셉은 하루를 사는 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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